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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 어떡하나요?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11.09 08:09

[정신의학신문 :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곳을 오늘 처음 접했는데 유익한 내용들이 많네요. 이런 기능의 게시판이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22세에 결혼하고 점점 심해지는 폭언과 가정 폭력으로 인해 4년 정도 결혼 생활을 지속하다 이혼했습니다. 방학 기간 중 공장에 나가 학비를 벌고 학기 중에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아이는 친정 부모님이 돌봐주셨어요. 가정폭력으로 이혼했으니 양육도 저희 쪽에서 하고 있고요. 다행히 아이는 친정에 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폭력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 남편은 술 먹고 한 번씩 난폭하게 변했지만 그렇게 잦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죠. 뻔한 이야기지만 술 안 먹었을 때는 괜찮았어요.

아이가 아빠, 엄마 모두를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에 격주에 한 번씩 아버지가 데려가 친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와 전 남편도 아이의 감정적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한 번씩 나들이도 가고 밥도 먹고 그렇게 보냈습니다.

제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생으로 올라가면서 아이가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심리 상담센터에 데리고 가보니 아이가 불안이 있더라고요. 주 양육자가 외할머니이고 저의 언니인 이모가 같이 살며 격주로 저와 전남편이 주말에 아이를 돌보니 양육 방식이 일관되지 않은 등으로 인해 아이가 불안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약 2-3개월 간 상담을 받고 다행히도 아이는 굉장히 좋아졌다고 하고 실제로 행동도 많이 좋아지고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저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목에서 언급했다시피 저는 주변에 미안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희 어머니께서 제 아이를 양육해주시기 때문에 제일 죄송하고 어머니가 어디가 아프시면 다 제 탓 같이 느껴져요. 주말에 본가에 가면 저는 주말 이틀 동안 최대한 아이랑 많이 놀아줍니다. 그렇게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또 주중 내내 저희 어머니께서 고생을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최대한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집안일 말이죠. 청소, 설거지 등이요.

별 거 아니지만 이 별 거 아닌 집안일을 하는 동안에 아이는 내심 서운해합니다. 저는 아이의 엄마 역할도 해야 하고 어머니의 딸 역할도 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이 사이에서 저는 없습니다. 그 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요. 제가 결혼한 이후로 저는 없어진 것 같아요.
저 자신의 존재가요. 그게 한 번씩 섭섭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저는 대학 등록금도 스스로 내느라 20세부터는 거의 항상 바빴습니다. 지금도 바쁘고 앞으로도 아이를 데려오기 전까진 바쁠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바쁜 걸 알지만 항상 언제 우리가 볼 수 있냐고 할 때마다 저는 할 말이 없어요. 바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밖에요. 정말이지 약속을 하는 것이 전 너무나 부담됩니다. 이혼 후 살려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이제 겨우 중소기업에 신입으로 취업해서 앞으로도 쭉 바쁠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나면 아무래도 아이를 먼저 보러 가야 하니까요.  저는 이 미안한 마음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먼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는 글쓴이님의 노력에 응원을 보냅니다. 또,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른 결혼의 실패 과정에서 감내하셨을 마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따뜻한 토닥임을 전해드립니다. 아마도, 아이가 다소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더 미안한 감정과 자신에 대한 공허감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사람들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면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현 상황에 이르게 한 자신의 선택들을 후회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현실의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자신을 스스로가 지탱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빠져들게 되죠. 많은 경우에 있어 이 상황의 사람들이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실제보다 과도하게 느껴지고, 심하게는 비현실적인 죄책감에 빠져들어 더욱더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글쓴이께서 질문하신 부모님,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없어진 듯 한 느낌도 비슷한 마음의 과정을 밟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실은 어떨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양육을 담당해주시는 부모님은 당연히 글쓴이님의 상황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또한 경험 많은 연장자이고 딸의 미래까지도 걱정하시는 부모님이 현재의 선택에 이르러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고 계신 것은 부모님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셨지 않을까요? 

친구들은 어떻습니까? 만약 친구들이 글쓴이님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면 다른 문제이지만, 알고 있다면 간혹 말하는 못 만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은 ‘난 아직 너에게 관심이 많아’ ‘네 상황 아니까 힘내’ 하는 관심의 표시이지 글쓴이님에 대한 투정이나 실제적인 서운함이 아니지 않을까요?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에는 현재 글쓴이님은 최선을 다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의 부족, 자존감의 저하가 미안한 감정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미안함의 기저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즉 과거에 대한 후회가 깔려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의 선택을 현재에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란 없죠. 아직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별수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수밖에요. 부모님께 짐을 지워드리고 친구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한 것 같은 미안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생각됩니다. 그럼 조금만 미안해하십시오. 그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고 있을 거고, 현재의 내가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글쓴이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과거의 자신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조언을 좀 더 드리자면, 위 글은 부모님과 친구들이 글쓴이님의 상황을 알고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작성되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거나 부족하다면 그것부터 하십시오. 나도 과거의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지만 현재는 모두의 미래를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두 번째로, 아이에게는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의 질도 중요합니다. 아이와 더 애착을 쌓을 수 있는 놀이, 정서적인 교류와 대화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아이와 부모님과 상의해 보십시오. 참. 아이를 상담하셨던 치료사와 상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세 번째는,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투자하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내가 즐겁고 충전이 된다고 느끼는 활동을 할 시간을요. 지금 글쓴이님은 자신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분들도 힘든 상황을 버텨내고 앞으로 가고 있는 글쓴이님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죄책감과 자신이 없다는 공허함은 당신의 마음을 갉아먹고 무너지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은 꼭 만드십시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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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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