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에릭 홈브루거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정신분석학자로 전 생애에 걸친 심리사회적 발단 단계를 정립한 인물입니다. 성(Last name)이 에릭슨(Erikson)인데요. 

에릭(Erik) + 아들(son) = 에릭의 아들 

자신이 ‘에릭슨’이란 성의 시조(始祖)입니다. 성장 배경이 순탄하진 않은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8단계(생애주기 이론)는 매우 유명한데요. 이 사람이 중년(40 ~ 65세)의 핵심과제로 ‘생산성(Generativity)’을 강조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중년엔 열심히 일하라는 거죠. 

 

Erik Homburger Erikson

 

열심히 일을 하는 전 진료실에서 가끔 질문카드를 꺼내 듭니다. 제가 이 카드를 꺼내 들 때는 말문을 쉽게 열지 않는 중학생이 제 앞에 앉아 있을 때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남학생입니다. 

그날 제가 꺼내 든 카드는 이겁니다. 

<Question>
어렸을 적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DEEP>
노년에 나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할까요?

 

한참을 생각한 그 녀석이 간단히 대답을 던집니다. 
“카드요.” 
이 친구가 어렸을 적 카드를 모았나 봅니다. 

“지금은 최신 스마트폰이요.” 
지금 스마트폰은 옛날 기종이라 게임이 버벅거리겠죠. 

“나중에는 모르겠어요.” 

"좀 더 생각해 보지 그러니?” 
2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 친구가 한 마디를 하는데 하루 종일 찜찜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중에 뭘 가지고 싶은데요?” 
그 말을 남기고 그 친구는 나갔습니다. 

퇴근길 차 안에서, 그다음 날에도 계속 그 친구의 말이 맴돌았습니다. 

- 노년에 나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할까요?

전 이 질문에 선뜻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혹시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였나?'라고 고민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 노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할까요? 

질문을 바꾸고, 다시 고민했습니다. 제 이름 석자? 굳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유명하지도 않지만 유명해지면 삶이 피곤해진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숨은 실력자’가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질문을 또 바꿨습니다. 

- 노년에 내게 뭐가 남아 있을까?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가지고 싶은 것’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죠. 금세 제 가슴 깊숙이 박히는 것이 있더군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입니다.

 

중년, 끊임없이 뭔가를 생산해 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산해 내도 이상하게 초조합니다. 의학기술이 발전한단 소식에 내 생명이 늘 것이란 기대감보단, 그 긴 기간 어떻게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저이기에, 이 카드가 목표를 묻는 질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카드는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카드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꼭 옆도 둘러봅니다.

여러분은 노년에 무엇을 가지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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