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무기력하고, 집중을 못하고, 불안하고, 어떤 것을 해도 흥미가 나질 않습니다. 얘기를 할 때도 감정이 먼저 올라와서 눈물이 납니다.

이러한 증상이 최근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지속됐는데 중간 중간마다 이러한 생각을 돌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잘 해결이 되지 않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아픈 거 같아요.

우선, 20살 때 재수 생활을 하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되지 않아 원하지 않는 대학, 과에 아무렇게나 들어갔습니다.

21살 때, 대학에 입학 후 다시 한번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고 싶어서 반수를 결심했습니다. 한 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게 됐고, 저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혼은 생각처럼 빨리 끝나지 않았고, 계속된 수험 스트레스와 가정의 불화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결국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결과적으로 또 실패했습니다.

22살에 엄마와 이야기 끝에 유학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물론 엄마는 아빠와의 소송 중이었고 이 상황이 끝나면 학비는 보태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가고 싶었던 미대를 준비했습니다.

23살 때, 결국 원하는 학교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혼 위자료를 생각보다 많이 받을 수가 없어서, 돈이 없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내려오니, 엄마가 너무 힘들게 사시고 있었습니다. 이때 좌절감과 실패감,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너무 심리적으로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희망 없이 지내다가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같이 준비하는 게 어떻냐길래, 다시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계속해서 준비했고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너무 시험 치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아빠는 중간중간 연락을 해왔지만 이혼이 제 탓이라는 원망만 하셨고, 저는 너무 힘들어서 연락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견디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빠와 연락을 안 하면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나마 살 거 같았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가 이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재혼도 했더라고요. 완전히 분리가 됐다는 불안감을 또 느꼈습니다. 혹시나 엄마랑 다시 합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불씨가 사그라들었습니다. 좌절하게 되네요.

 

사진_픽사베이

 

요즘 사회적으로도, 제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제라도 아빠한테 경제적인 능력을 도움을 받아 대학을 가려고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는 명품 시계, 비싼 차 등 그새 엄청 사치를 부렸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아빠 모습과 대비돼서 좌절하게 되네요. 

아빠는 엄마랑 같이 사는 저한테 쓰는 돈이 아까웠는지 자기가 원하는 전문대, 학과를 가지 않으면 어떠한 지원도 해줄 수 없다고 하네요.

저는 아빠가 강요하는 삶대로 살기 싫어요. 제 삶인데 제가 스스로 하나도 할 수 없게 만들어요. 답답합니다.

나이가 든 제가 대학을 가면 취업이 안되고 돈만 버린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저한테 자기 분수도 모르고 욕심부리고 겉멋만 들었다고 하네요. 돈은 최대한 안 들고 자기가 원하는 삶대로 살기 바라네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혼은 제 탓으로 돌립니다. 너무 힘들어요. 아빠가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라 더 이상 대화조차 안돼요. 그냥 제 삶을 위해서 아빠와 연락을 끊고 없는 사람처럼 사는 게 나을까요.

 

가정불화에, 미래에 대한 불안에, 경제적인 불안감, 어느 하나라도 안정적인 게 없어서 무기력하고 우울하네요.

계속된 수험공부와, 이혼으로 인한 잦은 이사로 주위에 친구 하나 없네요.

사회적인 행복감도 안 느껴본 지 오래예요. 매일 집에 있는 게 제 일상이에요.

시험 치는 것도 너무 두렵고 불안합니다. 또 떨어질까 봐요.

집중하기도 쉽지 않아요. 이 불안한 삶을 그만하고 싶어요.

 

 

A) 안녕하세요, 질문자님께서 오랜 기간 고민하셨던 내용을 읽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먼저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대학 진학의 실패, 부모님의 이혼,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방황이 이어지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먼저 의학적인 조언을 먼저 드릴게요.

무기력감, 우울감, 타인과의 관계 단절, 집중력의 저하, 만사 흥미의 저하 등의 증상은 우울증을 강하게 시사하는 소견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 동안 마음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서서히 쌓여온, 뿌리가 깊은 우울이에요.

질문자님께서 건강한 삶을 위한 변화를 원하신다면, 필히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꼭 받으시길 바랍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꾸준히 받으신다면, 눈앞을 가리고 있는 뿌연 안개가 걷히고, 자신이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찬 상태에서는 건강한 선택을 하기는 참 어려워요. 

 

조금 더 말씀드릴게요.

긴 질문을 주셨지만, 제가 온라인을 통한 조언을 드려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질문자님께서 제 진료실을 찾아오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지금 질문자님께서는 타인의 의지, 즉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 힘든 20대를 보내고 계시는 걸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사정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는 생각으로 지내시는 것은, 더 깊은 고통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현재의 고통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삶의 끔찍한 고통을 마주하길 피하고, 주변 환경이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주기만 기다리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더 크게 만들 뿐이에요.

 

사진_픽사베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애려 하거나, 피하려 하는 행동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괴물과 낭떠러지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을 어떻게든 해보려 끙끙대는 사이에, 낭떠러지로 점점 끌려가고 있는 거죠.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기기 위해 끝까지 애를 쓰는 것이 정답일까요?

아닐 것 같아요.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줄다리기를 그만두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자신의 고통을 좀 더 구체화시켜보세요.

그리고, 선택을 하지 않고 미뤄놓기만 했던 자신의 행동이, 그간 어떤 문제들을 일으켜 왔었나 노트를 펼쳐 적어보시길 바랍니다.

이길 수 없는 괴물과의 줄다리기에 얼마나 인생을 낭비해왔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성장 환경의 타인에 의한 영향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죠. 원망하는 마음도 클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나 환경을 탓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과거를 원망하는 일은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줄다리기를 놓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과거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좀 더 건강한 선택을 하기 위함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지요.

현 상황에서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우울증 치료와 더불어 조금씩 건강한 행동들을 선택해 나갈 수만 있다면, 뿌리가 깊은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질문자님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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