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남의 힘든 마음 들어주는 정신과 의사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제법 자주 듣는 질문이다. 물론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 마음관리에 관한 부분도 있다. 환자가 쏟아내는 생각과 감정, 마음의 홍수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환자의 마음에 공감하되 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른다. 그래야지만 진료실을 찾아온 그에게 가장 알맞은 도움을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위와 같은 질문의 의도는 그런 진료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신과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자입니다.사람들이 저를 빤히 쳐다볼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질문드립니다.예를 들어, 독서실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어서 누가 오나 확인하는 사람. 뭐 잠깐 정도 쳐다보는 건 괜찮은데 그것도 빤히 계속 제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고개까지 돌려서 쳐다보는 사람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자리도 옮겼고요.제가 이상하거나 착각하는 게 아니라, 옆에 제 친구도 있었는데 저 사람 왜 저러냐고 할 정도로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저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덧 2월의 마지막 주다. 매해 그렇듯 뭘 했는데 벌써 3월이야? 란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예년처럼 많은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했고 그중 몇몇은 이미 흐지부지 되었다. 그래도 올해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계획들이 잘 이어지는 중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기, 나만의 진료실을 마련하기, 하루 30분은 스스로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등..몇 년 전만 해도 아이 없이 주말부부를 하며 평일 퇴근 후에 몇 시간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상념을 펼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퇴근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안녕하세요. 이렇게 흰 바탕을 보니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고는 싶지만, 아직 돈을 직접 벌 수준은 아니라서 그건 못하겠고. 너무 비싸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저는 괜찮은 줄 알았어요. 사실은 익숙해지는 거라는 걸 알긴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중학생 때부터 힘들어지다가, 고등학생 때 절정을 찍고 고3 마지막 수능 3개월 동안 누워만 있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의욕이 나질 않아서. 울 공간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고. 쉴 시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점심 약속이 있어 차에 올랐다. 조금 늦어서 익숙한 길이지만 최소 시간 경로를 확실히 하고자 네비게이션을 찍고 갔다. 본래는 봄 풍경이 예쁜 언덕길을 지나가는 경로라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안내해 주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전혀 엉뚱한 길이 나왔다. 바쁜 하루 중 잠깐 풍경을 보며 쉴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시간이 빠듯했던지라 되돌아갈 수도 없어 그저 꾸준히 네비를 따라갔다. 그런데 웬걸, 10년을 산동네에서도 처음 보는 샛길을 골라 더 높고 상쾌한 전망으로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안녕하세요. 저는 학창 시절 내내 따돌림을 당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괴롭고 불행합니다.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요.요즘 여러 군데서 학폭 뉴스가 터지는데 그게 트리거가 되어 자꾸 옛 생각이 납니다. 따돌림 이후 저는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고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왜 긴 시간 동안 제 곁엔 아무도 없었던 걸까요. 가해자들은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저를 괴롭혔을까요? 또한, 사람은 믿는 게 아니라고 배웠어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 집 냉장고 야채칸에는 늘 조그만 초록색 청양고추가 있다. 한 열 개~열다섯 개 정도 든 고추 가격은 990원.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물가인데 고맙게도 이 가격은 학교 다닐 때 자취 때 보다 큰 차이가 없다. 라면을 끓일 때 이 고추를 넣고 안 넣고 에서 국물의 시원함과 칼칼함은 극명히 차이가 난다. 라면을 끓일 때면 우선 넙적한 구이용 냉동만두와 냉동 대파(있을 때)를 적당히 바닥에 깐다. 커피포트에 끓인 물(그래야 속도가 빠름)을 냄비에 붓고 건더기 스프와 라면 스프를 먼저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분으로부터 인상적인 표현을 들었다. 생각으로 머리가 마치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이라고 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과 불안이 찾아온 분이었는데,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또 곱씹는 것으로 인한 고통을 이야기하셨다. 단어와 단어가 넘칠 듯이 차올라서, 심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부풀어 오른 풍선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듯, 환자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작은 프로젝트를 망쳐서 윗사람에게 크게 혼났을 때부터였어요. 질책하는 말들을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로서 꼭 손에 넣고 싶은 도구가 하나 있다면 '기억 가위' 다. 진료실을 찾는 이들의 기억 중 잘라내면 좋을 것들만을 적당히 골라 잘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이들이 아픈 기억을 잊음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구하려 하고, 그러한 바람을 위한 많은 치료와 면담이 고안되었다. 그러나 아픈 기억과 그로 인한 힘든 감정들을 마음에서 제거하려는 노력은 종종 무위로 돌아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잊었다고 할 만할 즈음마다 지나간 아픔들은 다시 되살아나 우리를 괴롭히곤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힘들 때마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죽지 않았던 건 결정적으로. 내 삶과 내 기억 속에 나에게 해를 가했던 사람들, 함부로 대한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가장 가까웠던 그 사람들은 내가 가장 힘든 순간 항상 눈빛으로, 무언의 긍정으로 자신과의 거리 유지와 나의 죽음을 바라 왔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말하고 있는 그들의 추악함이 나의 선택으로 덮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처음 그 마음을 발견한 건 연인에게서였고 그 후엔 아버지에게서였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돌잔치 이후 제주도로 첫 가족여행을 떠났다. 처가와 본가를 제외하고 아기를 다른 숙소에서 재우긴 처음이었다. 짐 챙기는 것도 낯설고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지만 다행히 아기는 잘 적응해줬다. 렌터카 업체를 나서는 늦은 오후, 보랏빛 노을이 짙어지는 차 없는 해안도로를 창을 활짝 연 채 굽이굽이 지나며 아기가 크게 옹알이를 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아기를 신경 쓰느라 시달렸던 긴장과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다.호사다마는 잘 들어맞을 때가 너무 많아 감탄스럽고도 짜증 나는 사자성어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가 음원 발매 소식을 알려왔다. 취미로 음악을 즐기고 장래에 싱어송라이터를 꿈꾼다는 것은 알았지만 벌써 정식 가수가 될 만큼의 실력자인지는 미처 몰랐다. 진료받는 동안 조금씩 준비한 음원을 드디어 등록했다는 그의 미소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축하해요. 쑥스러울 수도 있으니 혼자 있을 때 꼭 들어볼게요.” 진료실 문이 닫히자마자 즐겨 듣는 음악 어플에 검색을 해 보니 대번에 연관검색어와 함께 음악이 나온다. 평소 면담 때의 다소 차분한 음성이 아니라 한층 톤이 높지만, 흠칫할 만큼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게시판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저는 학창 시절에는 학교폭력, 집안에서는 폭언, 폭행에 시달리던 사람으로 중학교 때 시작했던 자해를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보다 못한 어머니가 어디선가 소개받았다며 보낸 병원에 잠깐 치료를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병원에서는 제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선생님을 만났고, 집에서는 계속되는 가족들의 정신병자라는 말, 세상에 힘든 사람이 너뿐이 아닌데 유난 떨지 말라는 말 등 좋지 않은 말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