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강박증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의학적·심리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정신건강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강박증을 겪는 분들은 “오염되면 안 돼”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 날 거야” 같은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사로잡혀, 때로는 그 생각과 끊임없이 싸우거나 반대로 그대로 믿고 행동에 옮기며 고통을 겪곤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하면 덜 괴롭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인지 재구조화(cognitive restructuring) 같은 인지적 기법을 떠올리게 됩니다(Beck, 1979). 이는 “내가 하는 생각이 실제로 얼마나 타당한지”를 점검하고, 건강한 대체 사고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박증에서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거나 바꾸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더 사로잡히는 역설도 흔히 경험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강박증에서 자주 나타나는 인지오류를 살펴보고, 소크라테스식 질문과 인지 재구조화 과정을 통해 생각을 다뤄보는 방법을 소개하면서도, “생각과 싸우지 않기”라는 역설적 태도가 왜 중요한지도 함께 논의해보겠습니다.
강박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지 오류들
강박증을 겪다 보면 특정 주제(예: ‘오염’, ‘확인’, ‘침투적 사고’)에 대해 과도한 불안이 일어나고, 이것이 여러 가지 인지적 오류를 동반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위험 과대평가”입니다. 일상적인 수준의 오염이나 실수가 곧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것처럼 믿는 경우이지요. 예컨대 “쓰레기통을 만진 손을 바로 씻지 않으면 치명적 감염이 생길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둘째, “생각-행동 융합”입니다.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그런 행위를 저지른 것과 비슷한 죄책감을 느끼는 상태입니다(Rachman, 1997 참조). 예컨대 “내가 나쁜 생각을 했다 →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연결 지어 해석해버리곤 합니다.
셋째, “과도한 책임감”과 “확실성 요구”가 있습니다. 강박증 환자분들은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전부 내 탓”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그걸 예방하기 위해 끝없이 확인하거나 완벽함을 추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절대적인 안전이나 완벽한 확실성을 보장하지 않으므로,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불안과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사고 점검하기
위와 같은 자동적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인지 재구조화(cognitive restructuring)입니다(Beck, 1979). 간단히 말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부정적 사고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대체 사고를 찾아내어 정서와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려는 기법입니다. 여기서 도움이 되는 방법이 소크라테스식 질문(Socratic questioning)인데, 스스로에게 “왜 그렇게 확신하는가?” “증거가 있는가?”와 같은 논리적·탐구적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생각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Beck, 1976). 예를 들어 “쓰레기통을 만진 손을 10분 안에 씻지 않으면 병에 걸릴 거야”라고 믿는다면,
10분 안에 씻지 않았던 과거 사례가 과연 얼마나 있었나?
그때 실제로 병에 걸린 적이 있었나?
다른 사람들은 더 여유롭게 대응해도 별문제 없이 지내지 않나?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보면, 이전에는 무조건 진실처럼 믿었던 사고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좀 찝찝할 수 있겠지만,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지요.
건강한 대체 사고 찾기
이렇게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통해 “너무 과장된 생각이었다”는 걸 인식한다다면,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인 대체 사고는 무엇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Clark & Beck, 2010 참조). 예컨대 “쓰레기통을 만진 손이 지저분할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씻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한 감염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이를 ‘건강한 대체 사고’라고 부르고, 이전의 자동적 사고와 대조해보면서 “어떤 사고가 나를 더 합리적 행동으로 이끄는가”를 살펴보는 겁니다. 이렇게 재구조화 과정을 거치면, 실제로 느끼는 불안도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직접 기록하는 것의 장점과 효과
또한 강박증을 다룰 때는 이런 과정을 머릿속으로만 하지 않고, 직접 종이에 적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정적 사고가 떠올랐고, 그때 내 감정은 어땠으며,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해본 뒤 어떤 대체 사고를 찾았는지”를 간단한 양식으로 남겨보십시오. 이렇게 기록하면 기억에 의존할 때보다 훨씬 명료하게 사고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중에 재발 방지가 필요한 시점에도 참조하기 쉽습니다. 또한 “아, 예전엔 이걸 심각하게 믿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변화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동기 부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과 다투는 것의 함정: 더 얽히게 될 수 있다
다만 강박증에서 인지 재구조화를 시도할 때,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된 생각을 밀어내야 해!”라는 태도로 ‘생각과 싸우기’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그 생각에 더 사로잡히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를 “백곰 효과(Wegner, 1989)”라고 부르는데, “하얀 곰을을 떠올리지 말라” 하면 할수록 더 강렬히 떠오르는 것처럼, 억지로 없애려 애쓸수록 그 생각이 오히려 강화된다는 역설입니다. 이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적의 존재로 몰아내려 한다기보다, 불안을 과장하는 목소리로 잠시 검토한 뒤, 그 필요가 다했다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실제 인지 재구조화도 생각과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거나 말살하는 게 아니라, “이 생각이 왜 틀리거나 과장되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이제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결국, 생각을 바꾸는 인지 재구조화 과정은 “강박적 생각과 결투를 벌여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가 아니라, “이 생각을 조금 더 거리 두고 살펴보니, 의외로 많이 과장되었고, 다른 대체 사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작업입니다. 그 후에는 그 생각에 굳이 얽혀들지 않음으로써, 뇌가 “이건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는 불안”이라고 학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지 재구조화의 진짜 효과는 “생각과 대적해 이기기”가 아니라, “생각을 ‘생각일 뿐’으로 바라보며, 자기 마음속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습니다.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길
강박증에서 “생각을 바꾸어보기”라는 주제로 인지 기법을 활용할 때는,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통해 자동적 사고의 오류를 찾아내고, 보다 균형 잡힌 대체 사고로 전환해보는 접근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직접 종이에 적는 습관은, 내 사고 패턴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변화의 과정을 명료히 인식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과 끝없이 다툴수록 더 깊이 얽히게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결국, 인지 재구조화는 생각을 무조건 반박해 쫓아내기보다는 “이 생각이 꼭 사실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쓰지 않은 채 흘려보내는” 길입니다. 그 과정에서 불안이 줄어들고, 새로운 행동을 시도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강박증을 다루면서 인지 재구조화를 시도하실 때, “지금 이 생각이 정말 타당한가? 다른 증거나 해석도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네보십시오. 그리고 결론이 어느 정도 나왔다면, 더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그래, 충분히 살펴봤으니 놓아주자”라고 마무리 짓는 겁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생각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룰 수 있다”는 인지적 유연성이 자리 잡게 되고, 이는 강박적 불안을 줄이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 것입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신재현 원장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을 만나고나서 분노를 좀더 잘 다루게 된 것 같아요"
"신재현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관련기사
- 6. 마음챙김(mindfulness) - 강박증 치료의 필수 요소
- 5. 강박적 생각과의 거리두기 : 인지적 탈융합이란?
- 4. 강박증 치료의 핵심, 불확실성과 함께 살기 : 수용전념치료(ACT)의 효과
- 3. 강박증, 회피하면 할 수록 더 심해진다고..
- 2.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 - 악순환의 뇌과학 (1)
- 1. 강박증이란 무엇인가 - 강박증의 본질과 오해
- 8. 강박증 치료의 표준 기법 - 노출 및 반응 방지(ERP)
- 9. 강박증 치료의 표준기법 - 노출 및 반응 방지{ERP)
- 10. 강박증 치료에서 약물의 역할과 한계
- 11. 자기자비와 강박증 - 자신에게 더 친절해지기
- 12. 강박증의 핵심 두려움 탐색하기 - 내가 정말 두려워 하는 게 뭘까
- 13. 가치를 명료화하기 - 강박증을 넘어서는 삶의 방향
- 14. 강박증 치료의 실제 사례 - ACT와 ERP의 효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