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강박증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의학적·심리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정신건강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강박증(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의 가장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고 여기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를 없애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그런데 이런 생각과 행동의 악순환이 왜 이토록 쉽게 끊기지 않을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그리고 그 뒤에서 작동하는 뇌과학적 요인들에 대해 보다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의 악순환
우선 강박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박 사고(Obsessions)와 강박 행동(Compulsions)이라는 두 가지 축이 어떻게 상호 보완하며 악순환을 만드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박 사고는 본인이 원치 않는데도 끊임없이 머릿속에 침투해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이미지입니다. 예컨대 “내가 병균에 감염될 거야” “내가 누군가를 해치게 될지도 몰라” “확인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거야” 같은 문장이 대표적입니다(Hezel & McNally, 2016). 강박 행동은 이러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로, 과도한 손 씻기나 문단속, 정리정돈 같은 눈에 보이는 활동뿐 아니라, 마음속에서 특정 숫자나 주문을 끊임없이 되뇌는 등 보이지 않는 ‘정신적 의식(의례,ritual)’도 포함됩니다(Olatunji, Davis, Powers, & Smits, 2013).
핵심 문제는 이 생각과 행동이 선순환이 아니라, 상호 강화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더러운 물건을 만졌다. 병균이 옮아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불안이 치솟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손을 씻으면 잠깐은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혹시 충분히 씻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는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고, 그러면 이전보다 더 철저히 씻어야 마음이 놓이는 식이지요(Abramowitz, McKay, & Storch, 2021).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손 씻기로 인해 소중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강박증, 악순환의 뇌과학
그렇다면 왜 이런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뇌과학적 요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뇌 영상 연구와 임상 관찰에 따르면, 강박증에는 전두엽과 기저핵, 시상 등이 연계된 특정 신경회로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Doron & Kyrios, 2015). 이 회로가 잘못된 위험 신호를 보내거나, 이미 내려진 ‘확인하라’는 명령을 끊임없이 재활성화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두엽의 한 부분인 안와전두피질과 기저핵의 일부인 선조체가 관련된 이 회로는, 일반적으로 특정 위험이나 충돌 상황이 해소되면 경고 신호를 멈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불안이 생겼다면 문을 확인하고 ‘이제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위험 경보가 꺼지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그런데 강박증 환자에게는 이 ‘멈춤 신호’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이미 문을 잠갔음에도 “그래도 뭔가 찜찜해. 더 확인해야 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계속 이어집니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이 반복된 의심이 새로운 불안을 유발하고, 또다시 행동을 부추기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죠.
‘모든 생각은 사실이고, 모든 결과는 다 내 책임이다?’
심리적 측면에서는 이런 악순환을 유지시키는 여러 기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생각-행동 융합(Thought-Action Fu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이는 “이런 나쁜 생각이 든다는 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믿어버리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Hezel & McNally, 2016). 예컨대 “내가 아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질 것 같아 공포감이 배가되고, 그 공포를 중화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특정 주문을 외우거나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물론 실제 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즉각적인 의식에 매달릴수록 생각과 행동이 더 강력히 결속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 다른 요인은 ‘과도한 책임감(inflated responsibility)’입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내가 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믿음을 쉽게 가지는데, 이는 단순히 불안을 넘어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으로도 이어집니다(Olatunji et al., 2013). 가령 “혹시 불을 끄지 않으면 불이 날 수 있어. 그럼 이건 모두 내 탓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 때문에 더 끈질기게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식입니다. 이런 사고패턴이 악순환을 더욱 단단히 묶어버립니다.
사실 강박 사고와 행동은 단기적 안도감을 주는 측면이 있어서, 환자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불안을 줄이기 위한 본능적 방법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재앙적 생각은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고, 행동을 강화시키는 역설적 결과가 생기는 것이지요(Olatunji et al., 2013). 이런 이유로, “그냥 참으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강박증, ERP와 수용전념치료의 효과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가장 널리 알려진 접근 중 하나는 노출 및 반응 방지(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 ERP) 기법입니다. 이는 강박 사고로 인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환자를 점진적으로 노출시키되, 그때마다 평소처럼 강박 행동을 수행하지 않고 버티도록 연습하는 방법입니다(Olatunji et al., 2013). 예를 들어 문단속 강박이 심한 사람이라면, 일부러 문을 잠근 후에 한두 번 정도만 확인하고 더는 확인하지 않는 채 시간이 흐르도록 지켜보는 식입니다. 처음에는 극도로 불안해질 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추가 확인 없이도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고, 점차 과도한 확인 행동이 줄어듭니다.
최근에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역시 강박 사고와 행동의 악순환을 끊는 유용한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Hayes, Strosahl, & Wilson, 2012). ACT는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가치에 집중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완벽한 확실성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걸 확실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 “조금 불안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을 해보자”는 식으로 시야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ERP나 ACT 같은 치료를 통해 환자가 불안을 점진적으로 다루는 연습을 하면, 전두엽과 기저핵을 포함한 신경회로 역시 새로운 학습을 하게 됩니다(Doron & Kyrios, 2015). 즉, “더 이상 그 행동을 여러 번 안 해도 위험이 사라진다”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잘못 활성화되던 경고 신호가 약화되어 뇌가 기존의 강박 패턴을 덜 활성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치료가 순탄치는 않습니다. 스스로가 수십 차례 반복하던 안전 행동을 갑자기 중단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초기에 맞닥뜨리는 불안 감정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치료 과정을 조금씩 통과해나가다 보면, 강박 사고가 떠오르더라도 예전만큼 자동적으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되고, 불안 역시 이전보다 훨씬 빨리 잦아드는 변화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에게 “정말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는구나”라는 새로운 인지적 틀을 제공하고, 다시금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강박증 치료에서 “자기 비난”을 줄이는 일이 왜 필수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환자들은 대개 자신이 왜 이렇게 “쓸데없는”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지 답답해하고, 주위에서도 “조금만 참고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강박 사고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결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위험 신호가 끊이지 않고 울리는 뇌 신호와 학습된 불안 반응이 맞물려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입니다(Olatunji et al., 2013). 따라서 자책만으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심과 무력감이 커질 수 있어 치료적 개입과 적극적인 지지, 그리고 불안을 체득해 해소하는 체험이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불확실함, 그 너머에 있는 평온함을 향해
강박 사고와 행동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불안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만 강박증 환자에게는 이 욕구가 극도로 확대되어, 최소한의 불확실성이나 애매함마저 견딜 수 없게 된 상태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기에 강박증을 이해하는 건, 단지 일부 사람들의 “이상한 버릇”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와 마음이 불안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유지하는지를 전반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반복되는 악순환은, 뇌와 마음의 불안 경보 시스템이 서로 ‘잘못된 학습’으로 연결되어 생긴 구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반복 행위나 강박적 의식이 단기간에 안도감을 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그 불안을 키우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악순환을 끊는 길은 ‘노출’과 ‘반응 억제’, 나아가 ‘불확실함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다른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선택’으로 대표됩니다.
강박 사고가 불안을 일으키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행동이 불안을 더 키운다는 것이 강박증의 딜레마입니다. 뇌의 경보 시스템이 잘못 작동하는 것과,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거듭 학습된 행동이 맞물려 삶을 옥죄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악순환조차도 노출 훈련과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차츰 풀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강박 사고와 행동은 결코 해결 불가능한 숙제가 아닙니다. 다만 이 문제를 스스로만 해결하기엔 벅찬 경우가 많으니, 필요한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곤 합니다.
불확실함이 일으키는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완벽한 통제를 꿈꾸는 대신 조금씩 ‘안심이 안 되는’ 느낌을 견뎌보는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지점은 비단 강박증 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삶에서 크고 작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고, 그때마다 불안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박 사고와 행동의 악순환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는 불안 문제를 조금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일은, 강박증 환자뿐 아니라 불안에 맞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유용한 통찰과 실천법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신재현 원장
참고문헌
Abramowitz, J. S., McKay, D., & Storch, E. A. (2021). The Wiley Handbook of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s. Chichester, UK: John Wiley & Sons.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Washington, DC: Author.
Doron, G., & Kyrios, M. (2015).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A review of possible specific internal representations within a broader cognitive theory. Clinical Psychology Review, 39, 1–14.
Hayes, S. C., Strosahl, K. D., & Wilson, K. G. (2012).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The Process and Practice of Mindful Change (2nd ed.). New York: Guilford Press.
Hezel, D. M., & McNally, R. J. (2016). A theoretical review of cognitive biases and deficits in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Biological Psychology, 121, 221–232.
Olatunji, B. O., Davis, M. L., Powers, M. B., & Smits, J. A. (2013). Cognitive-behavioral therapy for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A meta-analysis of treatment outcome and moderators.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47(1), 33–41.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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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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