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강박증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의학적·심리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정신건강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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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들을 통해 강박증(OCD, 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이 원치 않는 침투적 사고(강박 사고)와 그 불안을 잠재우려는 반복적 행동(강박 행동)을 중심으로 굴러가며, 회피나 확인 같은 전략이 오히려 강박증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강박증 치료에서 최근 여러 연구와 임상 현장 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이하 ACT)를 중심으로, 우리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강박증의 핵심, 불확실한 느낌에 대한 불편함

 강박증을 겪는 분들은 종종 ‘확실성’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정말 깨끗하게 씻었는지” “문이 잠겼는지”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같은 부분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얻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완벽한 확신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문을 여러 번 잠갔다 해도 마음속 불안이 ‘100% 잠겼다고 확신해!’라고 선언해주지 않는 이상, 의심은 계속 머무르기 때문입니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강박증은 이런 미세한 의심을 키워 ‘혹시나’ 하는 불안을 더 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강박증이 시작되고, 악화되는 중심에는 이런 불확실성이 자리합니다.

 ACT에서는 바로 이 ‘확실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한 축이라고 봅니다(Eifert & Forsyth, 2005). 즉, 불확실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질 때마다,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해 확인이나 회피, 의식화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대신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이 누적되면서 일상 전체가 강박 사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ACT의 기본 철학: 불안을 없애는 대신, 삶을 확장하기

 수용전념치료(ACT)는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CBT)와 달리, 생각이나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려는 시도보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에 집중합니다(Hayes, Strosahl, & Wilson, 1999). 강박증 환자분들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다가 오히려 불안이 더 커지는 역설을 체험하는데, ACT는 불안을 꼭 지워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불안을 조금 안고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려 합니다.

 예컨대 문을 잠갔는지 반복 확인하는 분께, ACT에서는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려고 하시기보다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100% 확신이 서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중요한 활동에 집중해볼 수 있는가”를 탐색하도록 권유합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완전한 확신을 얻으려고 할 때마다 더 큰 불안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확실성을 놓아보는 연습이 조금씩 가능해집니다(Eifert & Forsyth, 2005).

불확실함과 ACT의 여섯 가지 핵심 과정

 ACT에서는 크게 여섯 가지 핵심 과정을 제시하는데, 이 중 불확실함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만한 개념들이 있습니다(Hayes et al., 1999).

1. 수용(Acceptance)
불안과 두려움을 무조건 참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며, 그것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시도 대신 “그냥 존재하게 두는” 연습을 말합니다. 강박증 환자분들은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강박 행동을 선택하는데, 수용이라는 태도는 “불안을 없앨 수는 없어도, 그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전제와 만납니다(Orsillo & Roemer, 2011).
 

2.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
“이 생각은 진실일까?”라고 질문하기보다, “이건 생각일 뿐이야”라는 인식을 길러내는 과정입니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강박 사고가 떠오를 때, 이를 단순한 문장 혹은 이미지로 보고, 그 문장이 현실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는 것입니다(Luoma, Hayes, & Walser, 2007). 앞서 언급한 탈융합 개념은 불확실함을 완벽히 제거하는 대신, 생각과 약간의 거리를 두어 내가 진짜 행하고 싶은 행동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3.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as-Context)
ACT에서는 ‘생각이나 감정으로서의 나’와는 별개로, 그 모든 경험을 지켜볼 수 있는 관찰자적 자기가 존재한다고 봅니다(Hayes et al., 1999). 불확실한 생각과 감정이 몰려올 때, “그 안에 완전히 빠져드는 나”가 아니라 “이런 불안을 경험하는 나 자신이 따로 있다”는 식의 시각을 익히면, 불확실함을 다루는 데 훨씬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4. 현재 순간에 대한 마음챙김(Contact with the Present Moment)
현재에 대한 주의집중은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강박 사고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재앙적’ 시나리오를 추측하게 만들지만,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하며 불안을 조금 객관화하도록 돕습니다(Baer & Krietemeyer, 2006).
 

5. 가치 명료화(Values Clarification)
불안과 싸우기보다, 내가 진정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강박증 환자분들이 강박 사고와 행동에 몰두하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가치들—가족, 친구, 취미, 학업 등—을 다시금 꺼내 보고, 그 가치들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가도록 안내합니다(Harris, 2009).
 

6. 전념 행동(Committed Action)
결국 행동 없이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불안과 불확실함이 남아 있어도, 그럼에도 내가 가치를 두는 영역에 발을 딛고 행동하는 것. 이를 통해 “불안을 완전히 없애지 않아도, 충분히 살 만한 세상이 있구나”라는 체험이 ACT에서 말하는 핵심입니다(Eifert & Forsyth, 2005).
 

확실성 대신, 삶의 방향을 향해해

 ACT의 시각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내가 원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 주목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대개 “만약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재앙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강박적 행동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계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재차 확실성을 확인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Abramowitz et al., 2009).

 ACT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강박적 행동이 아닌 내가 진정 원하는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보도록 강조합니다. 이것은 불확실함을 완전히 해소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확실함이 조금 남아 있더라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Harris, 2009). 예를 들어 “손을 씻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올라오더라도, 지금은 내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잠깐 손 씻기에 매달리는 대신 그 사람을 만나러 가겠다” 같은 선택을 해보는 것입니다.

작은 용기를 낸다는 것

 물론 ACT의 지향점대로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강박 사고와 행동에 익숙해진 분들께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조금씩 내어 시도하다 보면, 불안을 온전히 없애는 대신 “남아 있는 불안과 함께 무언가를 해낼 수 있구나”라는 체험이 쌓입니다. 그리고 이 체험이 강박증을 지탱하는 논리를 조금씩 허물어뜨립니다(Eifert & Forsyth, 2005).

 연습을 지속할 때는, 단번에 큰 변화를 이루려 하기보다 작은 목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는 확인을 아예 안 하겠다” 같은 무리한 결심보다는, “문단속을 보통 10번 확인하던 것을 오늘은 9번으로 줄여보겠다”는 식의 작은 도전을 반복해보는 것입니다.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불안이 있음에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형성하고, ACT에서 말하는 가치 중심 행동이 점차 확장됩니다(Luoma, Hayes, & Walser, 2007).

 끝으로, ACT가 말하는 불확실성과 함께 살기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점을 던집니다. 완전한 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확실성 속에서도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길 역시, 불확실함을 조금씩 허용하며, 대신 내가 원하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시간을 쓰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두려움을 피하는 대신, 두려움과 함께 전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ACT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완벽한 확신을 얻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부른다”는 역설에 대한 해답일 수 있습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작은 선택과 실천이 축적될 때, 강박증이라는 무거운 그림자도 서서히 빛을 드러내고, 삶의 지평이 조금씩 넓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신재현 원장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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