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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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어디에서 보낼까요? 많은 분들이 아마도 '직장'이라고 답하실 겁니다.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하루 9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는 이들에게, 일터는 단순히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삶의 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공간에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렇게 외롭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분명 매일 대화를 나누고, 회의도 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동료들이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허전하고, 나 혼자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고립감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신뢰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더 큰 외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정서적 고립(emotional isol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서적 고립은 타인과의 교류가 표면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루어질 때 생기기 쉽습니다. 일 이야기는 오가지만 감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누지 않고, 서로의 어려움이나 힘듦, 진심은 마음에 묻어둔 채 오로지 ‘역할’과 ‘성과’로만 관계가 유지되는 상황이지요.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이 진짜 존재로 존중받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워지고, 점차 마음의 문도 닫히게 됩니다.

 직장 내 외로움은 단지 감정적인 불편함에 그치지 않고, 정신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만성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이는 우울감, 불면, 불안 증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집중력과 동기 저하, 일에 대한 흥미 상실, 심지어는 번아웃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직장 내 고립감은 심리적 소진(burnout)과 퇴직 의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의 연구에서는 4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에서 사회적 고립이나 외로움을 겪고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혈액 내 단백질 수치를 비교했는데요. 그 결과 사회적 고립은 혈액 내 단백질 175종과, 외로움은 26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고립이나 외로움이 높으면 염증, 항바이러스성 반응, 면역 시스템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경험하며 단백질 수치가 높아진 이들이 실제 수명이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유대의 결핍은 정신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꾸준히 지목되어 왔습니다.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Baumeister)와 레어리(Leary)의 소속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의미 있는 정서적 유대를 맺고자 하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심리적 고통이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의 외로움은 단지 개인의 성격이나 사회성 부족 탓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최근에는 조직 문화 자체가 구성원 간의 정서적 연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 상호 신뢰보다는 감시와 평가가 우선되는 구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점으로 여겨지는 문화 등이 외로움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결국, 외로움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고, 조직의 문제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외로움 속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직장에서의 외로움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질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누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지금 내 관계는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통해 나의 관계 지형도를 점검해 보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연결 시도를 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동료에게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요?”, “요즘 좀 지치는데, 다들 어떻게 버티고 계세요?” 같은 짧은 말 한마디가 의외의 공감대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조심스러울 수 있지만, 관계는 그런 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감정노동이 많은 직장 환경일수록 정서적 소진을 예방하기 위해 ‘일과 감정 사이에 숨 쉴 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짧은 산책이나 명상, 감정 일기, 회복 시간 등을 통해 내 감정을 정돈하고 나를 돌보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이 깊어져서 일상생활이나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고립된 감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작업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큰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관계 속에서 다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관계 속에서 회복됩니다. 직장은 어쩌면 우리의 관계 능력을 가장 많이 시험받는 곳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연결들 속에서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혹시 지금 ‘나는 이곳에서 혼자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그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조용히 안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또 누군가의 다가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내어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함께 일한다는 것, 어쩌면 그 말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나눌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요.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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