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시나요? 가족은 우리에게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군가에는 가족이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공동체, 삶의 근간이 됩니다. 하지만 가족 간의 불화, 건강하지 못한 관계, 재정적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가족이 큰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족은 그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따라서 힘이 되기도, 반대로 짐이 되기도 하는데요.
개인적 삶이 강조되고 바쁜 일상이 이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끼고 소통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요즘 가족끼리 대화가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끼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보면 가족끼리도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줄고, 각자 방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날이 많아지기도 하는데요. 때로는 사소한 오해가 쌓여 큰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에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으실 겁니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가족의 모습도, 가족이 겪는 고민도 참 다양해졌습니다.
예전에는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며 서로 의지하는 대가족이 많았지만, 이제는 핵가족,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정, 1인 가구까지 가족의 모습이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자녀 돌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세대 간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 부모-자녀 사이의 소통 단절, 이혼과 재혼, 노부모 부양 문제 등 가족 안에서 겪는 어려움도 복잡해졌죠. 요즘은 가족 내 갈등이 극심해져서 가족폭력, 청소년 문제, 고독사 등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족 문제를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가족끼리 참고 살아야지”, “남들 다 힘들다는데 우리만 힘든 건 아니잖아”라며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를 그냥 방치하면 결국 가족 모두가 더 힘들어지고, 개인의 정신건강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 만큼 가족 문제를 ‘집안일’로만 치부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에는 가족관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가족상담도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요. 가족상담이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 각자의 입장과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서로의 오해를 풀며, 건강한 소통 방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가족상담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함께 살펴본다는 점에서 개인상담과는 조금 다릅니다.
특히 가족상담에서 많이 활용되는 이론이 바로 ‘가족체계이론(Family Systems Theory)’입니다. 가족체계이론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이 제안한 이론으로, 가족을 하나의 정서적 단위이자 상호의존적인 체계로 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족체계이론은 "개인 문제는 그 사람을 둘러싼 가족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습니다. 즉, 가족을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유기체, ‘체계’로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변화가 생기면 그 영향이 다른 가족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져서 가족 전체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가족상담에서는 누구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상호작용과 관계의 패턴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체계이론에서는 가족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대화 방식, 역할 분담, 감정 표현 습관 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자녀의 반항심이나 부모의 권위 문제로만 보지 않고, 가족 전체의 관계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때로는 부부 사이의 갈등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다른 가족의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가족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상담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상담자는 가족이 가진 고유한 상호작용의 패턴을 함께 관찰하고 불필요한 오해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운 소통 방식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는 방법,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과정 등을 함께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가족상담의 목적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건강하게 지지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없겠지만, 가족상담은 가족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합니다.
혹시 가족 안에서 겪는 갈등이나 어려움을 겪고 계신가요?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가족 안에서만 해결하거나 혼자 감당하려 너무 애쓰고 계시진 않나요? 가족 안에서, 혹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족상담은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 모두가 성장하고 회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이호선 원장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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