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러스트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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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발한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예술가나 과학자, 한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는 인물 중에는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죠.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애플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나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입체주의 화풍으로 현대미술의 장을 연 파블로 피카소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가진 창의력이 비결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 혹은 자녀들의 창의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곤 합니다. 그래서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여러 활동들을 할 수 있는 사교육을 자녀들에게 시키기도 하고, 관련 서적들을 열심히 찾아봅니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뇌의 어떤 영역과 연관되어 있을까요? 창의력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특정 영역이 있다면 그 부위를 활성화시켜 창의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뇌과학 분야에서는 창의성과 연관된 뇌 활동을 관찰하는 연구가 계속 진행되어왔는데요. 창의성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에 관여하는 뇌 영역 역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창의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예술가나 과학자 집단과 일반 집단을 대상으로 한 비교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 벨기에 루벤가톨릭 대학의 연구팀은 예술가들이 일반인에 비해 두정엽 쐐기전소엽 부위 회백질과 백질이 더 두껍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연구팀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미세운동 및 장기기억의 한 종류로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기억을 의미하는 절차기억과 관련된 뇌 부위가 더 활성화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뇌의 특정 영역이 예술적 활동을 비롯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행위와 더 깊은 상관을 가질 가능성을 고려해보게끔 합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창의성과 관련된 뇌의 특정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뇌의 전체영역이 창의성에 관여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창의성과 일대일 대응을 하는 단일 뇌 구조가 없고, 대뇌피질의 다양한 영역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을 포함하는 전뇌(全腦)가 활용되며, 서로 다른 뇌 영역 사이의 연결이 활성화될수록 창의성이 높아집니다. 실제로 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 때는 뇌의 특정 영역만 활성화되지만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뇌 전체가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창의적 과제의 성격에 따라 언어적인 것은 좌뇌에서, 비언어적인 것은 우뇌에서 더 많이 처리하는 것처럼 특정 영역과 더 연관되는 경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 전전두엽은 다양한 뇌 영역 중에서도 지능과 고차원적 사고와 밀접한 관련된 곳으로 창의성과 더 깊은 상관을 가진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의성은 주로 전두엽-후두엽, 측두엽-두정엽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평상시에는 서로 교류하지 않던 뇌 영역들이 활발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결될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결을 담당하는 뇌 백색질과 뇌량의 질이 창의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은 창의력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예술가 및 과학자와 창의성이 높지는 않지만 지능지수(IQ)가 높은 고학력자들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뇌 기능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두 집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상태와 특정 작업을 할 때의 뇌 활동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 창의성이 높은 집단에서는 특정 작업 시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뇌 연결이 더 많이 일어났으며, 그 연결의 긴밀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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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사실은 서로 다른 뇌 영역 사이의 연결을 촉진하는 것이 창의력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멀리 떨어진 뇌 부위의 연결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다양한 영역에 대한 경험과 융합,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서로 다른 대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융복합’과 ‘통섭’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연결을 통해 시너지를 얻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창의성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도 이런 시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하여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휴식과 공상도 창의력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특정 대상이나 주제에 몰두할 때 창의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을 쓰거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밤낮으로 고민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유레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흔히 ‘멍 때린다’고 표현하는 시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뇌에는 스트레스가 없는 휴식상태, 의식적인 활동이나 사고를 하지 않는 상태일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rwork)가 있습니다. 이때는 전전두엽, 측두엽, 두정엽이 활성화되는데,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여유를 갖고 공상하는 시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를 수 있습니다.

 융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경험, 휴식과 공상이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니, 지금까지 창의력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들과 다소 상반된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텐데요. 종일 책상에 앉아 일이나 공부만 하거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활동만 계속하는 것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일이나 공부 못지않게 놀이와 휴식,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중요합니다. 일상의 작은 휴식과 전환을 위한 활동을 즐기면서 창의력까지 높일 수 있다면 일석이조 아닐까요? 다양한 활동과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을 더 많이, 자주 해보시면서 창의적인 삶을 즐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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