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뇌 썩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많은 분께 아직 생소한 단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선정한 2024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에서 1위로 뽑힌 단어가 바로 이 ‘뇌 썩음(brain rot)’이라고 합니다. 뇌가 썩다니, 좀 무섭게 들리기도 하는데요. 낮은 품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지나치게 많이 이용하면서 집중력을 비롯한 지적, 정신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전년도 대비 사용량이 230% 급증했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보여지는 숏폼이나 릴스 등의 동영상 소비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들의 문해력이 많이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글을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익히고 맥락을 파악하며 상상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짧은 시간 동안 영상으로 제시되는 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쉬운 단어의 뜻도 파악하지 못해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심심한 위로’에서 ‘심심(甚深)’이 한자로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위로를 심심하게 하다니, 너무 성의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심하다’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인데요. 설마 진짜 이런 일이 생길까 싶지만,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어휘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한 예능에서는 “이 일은 ~~씨가 전담하게”라고 상사가 지시하는 상황에서 ‘전담’을 ‘전자담배’로 받아들인 신입사원이 퇴사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숏폼이나 동영상이 부정적인 영향만을 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숏폼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유행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동영상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숏폼이나 동영상 소비량과 사용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숏폼의 경우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을 담을 때가 많고, 이런 콘텐츠에 내성이 생기면 점점 더 수위가 높은 영상을 찾게 됩니다. 흥미로운 영상을 계속 시청하면서 도파민이 분비되고, 일종의 중독처럼 숏폼 영상 시청을 멈추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과도한 보상이 짧은 시간 동안 제공되면서 도파민이 많이 나오고, 처음에는 조금만 봐야지 했다가도 어느새 몇 시간씩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짧은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면 주의집중 시간이 짧아져서 긴 영상을 시청하거나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여기에 더해 영상을 보는 속도를 1.5배속, 2배속으로 보면서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면서 인내심이 줄어들고 성격이 급해지거나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짜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아동들의 경우 이런 부분에 더 취약하고 행동을 통제하기가 더 어렵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숏폼의 과도한 사용은 또한 우울감과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 즉 현실 세계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외롭거나 우울할수록 즐거움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숏폼을 비롯한 동영상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를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켜면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있고, 그곳으로 잠시 도피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할 때마다 필요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도구가 있으니, 그보다 좋은 것이 없는 셈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잠시나마 동영상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일상적인 자극에는 뇌가 활성화되지 않고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며, 현실에는 점차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팝콘 브레인’이라고 하는데요.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듯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뇌가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낮은 자극에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텐데, 팝콘 브레인이 되면서 더 큰 자극만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일종의 ‘행위중독’처럼 계속해서 숏폼이나 동영상을 찾도록 합니다.
여기에 더해 AI 기술과 딥페이크 등을 활용한 영상은 진위를 알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윤리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상들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다 보면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온라인 동영상 제공 알고리즘 특성상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에만 익숙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하여 ‘뇌 썩음’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요. 손가락으로 몇 번 클릭만 하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제공되고,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면서 점차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저하됩니다. 이런 식으로 뇌가 수동적 활동에 익숙해지면 전두엽과 변연계를 비롯한 뇌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보상 체계를 관장하는 전두엽과 변연계가 과활성화되고,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이 저하됩니다.
이렇게 숏폼이나 동영상 중독으로 인한 뇌 썩음 현상을 막기 위해서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금욕 상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의미 있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숏폼을 과도하게 보는 것이 우울감과 관계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하면서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숏폼이나 동영상을 통해 고자극을 찾고자 하는 동기가 줄어듭니다. 그러면서 일상적 삶과 숏폼, 동영상 시청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숏폼을 보지 말아야지’라고 강제로 제한하기보다는,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방향으로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숏폼과 동영상으로 뇌가 과각성되면서 쉴 틈이 없어졌을 수 있는데요. 그런 뇌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명상이나 산책, 운동과 같은 신체활동을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통해 뇌 썩음을 예방하고 뇌 건강을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정희주 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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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노력을 하기, 그리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의식적으로’ 목표에 대해 보상하기. 중요한 내용을 많이 배워갑니다!"
"근육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