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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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어느 날,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흥미 있게 시청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TV 속 화면에는 한 청년이 나와 컴퓨터 전원을 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청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신문으로 그날의 이슈를 확인합니다. 잠시 뒤, 리포트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상에서 찾고, 작성한 과제를 이메일을 통해 교수님께 전송합니다. 저녁 무렵 그는 컴퓨터로 좋아하는 영상을 시청한 뒤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당시 저는 그 청년의 하루가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어 컴퓨터 앞에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우리 생활 속에서 막 들어오기 시작한 무렵이라 이런 모습이 아직 생소하게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 종일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인터넷으로 처리하는 일상이라니. 

그로부터 불과 얼마 뒤, 이 낯선 풍경이 이제는 우리들의 흔한 일상이 되리라고는 사실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찾고, 쇼핑을 하며, 각종 예약도 합니다. 은행 업무를 보고, 동영상 강의로 학습하는 것은 물론, 책도 전자책을 읽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느새 인터넷 세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아 웹을 항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 글을 읽거나 종이책에 집중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언젠가부터 많이 듣게 됩니다. 이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UCLA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기억노화센터 소장인 개리 스몰(Gary Small)은 디지털 미디어의 생리학적, 신경학적 영향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스몰과 그의 동료들은 인터넷의 사용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은 인터넷 검색에 숙달된 이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초보자였는데요, 이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는 동안 뇌를 스캔하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스캔 결과, 인터넷 검색에 숙련된 이들의 뇌 활동이 초보자에 비해 훨씬 광범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에게서는 외측 전전두엽 피질로 불리는 특정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뇌의 활동이 관찰되었지만, 초보자에게서는 이 부분에서의 활동이 무척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죠. 특히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 특별한 신경 통로가 발달된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사용으로 특정 신경 통로가 발달된 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변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웹 서핑을 하거나 웹 페이지를 읽을 때와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뇌가 아주 다르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된 부분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활성화되는 모습이 관찰되었죠. 

연구진은 웹 서핑을 할 때는 아주 다양한 뇌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뇌의 활동이 점차 둔화되는 노인들에게 인터넷 사용은 뇌를 훈련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장기간에 걸쳐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력과 기억력을 저하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가 혹사당할 수 있다며 경고합니다. 

우리의 뇌는 두 개의 다른 기억, 즉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받는 인상이나 감각, 생각 등은 단기 기억 속에 머무르면서 불과 몇 초 동안만 지속되며 의식되지만, 장기 기억에는 우리가 배운 모든 것들이 며칠 혹은 평생 동안 남게 됩니다.  

그리고 단기 기억 중에서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은 정보를 일시적으로 기억하고 유지해 줘서 ‘뇌 속의 메모지’로 불리는데, 가령 과거에 배웠던 무언가를 기억해 내기 위해서는 장기 기억에서 이 작업 기억으로 그것을 불러오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또 작업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정보나 기억의 저장이 일어날 때 우리 뇌의 지적 능력이 깊어지면서 스키마 형성에도 기여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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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작업 기억에 흘러드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인지 과부하(cognitive load)에 걸리면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거나 장기 기억에 있던 정보들과 연결하는 데도 오류가 생기고 맙니다. 이렇게 인지 과부하가 반복될수록 우리의 뇌는 더욱 산만해지고, 우리의 이해는 점차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증가되죠.

우리의 뇌를 인지 과부하의 덫에 빠지게 할 잠재적 요인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단, 인지 과부하에 있어 핵심 요인인 ‘관련 없는 문제의 해결’과 ‘주의력 분산’이 인터넷의 주요 특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오로지 문자와 내용, 의미 등에 집중함으로써 그중 상당 부분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며, 스키마 형성에 필요한 연관 관계를 구축해 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독서 행위는 강한 정신적 집중으로 말미암아 깊이 있는 사고와 기억력의 강화를 가능케 합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혁명”이라는 말처럼,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은행이나 쇼핑센터에 직접 다녀와야 하는 수고를 상당 부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클릭하면 즉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찾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다운받아 즐길 수도 있죠.

그런데 이렇게 인터넷이 우리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 주는 동안 우리 뇌는 얼마만큼 진화하고 있는 것일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즐거워지고 행복해졌는지도 말입니다. 기술의 발전에는 늘 명암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과 혜택은 적절히 누리는 슬기로움과 함께, 과도한 인터넷의 사용으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되찾을 수 있을지, 지금 잠시 컴퓨터 전원을 끄고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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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G. W. Small, T. D. Moody, P. Siddarth, & s. sy. Bookheimer, Your Brain on Google: Patterns of Cerebral Activation during Internet Searching.  
  2. Small and Vorgan, iBrain, 16-17.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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