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할 때, 운동할 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 등 삶의 다양한 순간마다 음악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상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는 경쾌한 템포의 음악을, 사색을 즐기거나 차분해지고 싶을 때는 느린 템포의 잔잔한 음악을 듣고는 하지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따뜻한 멜로디나 가사의 음악을, 반대로 슬픈 감정을 극대화하고 싶은 순간에는 단조의 구슬픈 선율이나 슬픈 노랫말의 음악을 찾아 듣습니다.
봄에 듣는 벚꽃에 관한 노래부터 여름에 듣는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의 댄스곡, 가을에 듣는 발라드, 연말이면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럴까지, 계절에 따라 즐겨 듣는 음악이 달라지기도 하고, 음악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음악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 모든 곳에 자리하며 우리의 기분, 생각, 행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음악의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활용해 치료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분야가 있는데요. 바로 ‘음악치료(music therapy)’입니다. 음악치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참전 군인들의 재활과 회복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음악치료학회(American Music Therapy Association)에 따르면, 음악치료는 임상적이고 경험을 기반으로 하며, 인증된 프로그램을 수료한 전문가와의 치료적 관계 속에서 음악을 통해 웰빙 증진, 스트레스 관리, 고통 경감, 감정 표현, 기억력 증진, 소통 능력 향상, 신체적 재활과 같은 개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또한 음악치료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기능을 복원, 유지 및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때 복원은 저하된 신체와 정신적 기능을 원래의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유지는 현재의 기능이나 삶의 질이 더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향상은 현재 갖고 있지 않은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기술이나 자질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악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흔히 음악에 소질이 있거나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음악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치료 방법이나 단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친 음악치료 전문가가 내담자의 음악에 관한 관심, 다룰 줄 아는 악기나 이전의 음악 관련 경험 등을 고려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치료는 음악 관련 기술을 습득하거나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돕고 그것을 위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따라서 음악적 재능이나 기술과 같은 부분은 음악치료에서의 일차적 관심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음악치료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능동적 방식부터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작사, 작곡, 발성과 같은 능동적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또, 이 과정을 개인 또는 집단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음악치료는 음악을 즐기면서 이완되고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뿐만 아니라 자기표현, 우울과 불안 감소, 스트레스 경감, 기억력 향상, 대처능력 및 자존감 향상과 같은 심리적 효과와 더불어 혈압 감소, 통증 완화와 같은 신체적 효과를 가집니다. 또, 일반 성인들뿐만 아니라 언어적 표현이나 인지적 능력에 제약이 있는 영유아, 자기표현이나 정서적 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기억력과 인지능력 감소를 경험하는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음악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임상 장면에서는 신생아나 아기들의 뇌 발달 촉진, 참전용사를 비롯한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심신안정과 자기표현 증진, 불안과 스트레스, 고통 완화 및 기분 조절과 자신감 향상, 자폐증 환자들의 증상 개선,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인지 능력 향상, 당뇨나 만성 통증 질환, 혈관질환, 두통, 수술 후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하고 피로감, 우울을 완화하는 목적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음악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 뇌에서는 알파파장이 발생하며, 이는 심신안정 및 스트레스 해소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또한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엔도르핀과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조절에도 영향을 미쳐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쾌락과 관련된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될 때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주파수의 음악 장르가 호르몬 분비나 감정조절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클래식이나 재즈음악이 상대적으로 심신 안정과 감정 조절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고 보고하기도 하고, 게라(Gerra G), 자이모비치(Zaimovic A) 등이 진행한 연구에서는 테크노 음악이 젊은이들의 성장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정 음악 장르나 주파수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특정 장르의 음악만이 치료적 효과를 가진다거나, 모든 사람에게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처럼 동일한 장르의 음악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안정감을 느끼는 음악이 다를 수 있고, 음악치료를 통해 기대하는 치료적 목표와 행동 변화 역시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정 장르나 주파수, 음역대의 음악만이 효과적이리라고 한계를 설정하기보다는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가장 효과적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음악과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꼭 음악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음악의 힘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했을 때, 불안이 올라올 때, 평소 즐겨 듣거나 심신에 안정을 주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긴장을 푸는 것은 어떨까요? 혹은 바쁜 일과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노래방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습니다.
합창단 활동에 참여하면서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력을 얻는 것도 좋습니다. 드럼이나 가야금, 피아노, 플롯 등 평소 관심 있던 악기를 배워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혼자 수첩이나 일기장에 오늘 느낀 감정을 노래 가사처럼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장난처럼 끄적거린 메모가 쌓여, 언젠가 근사한 노래로 탄생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음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발견하며 매일을 더 풍성하고 활기차기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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