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원근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ADHD 아동들을 만나다 보면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비염 등 아토피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물론 알레르기 증상이 심할 경우 그 자체로도 주의 집중의 어려움, 기억력 저하, 정서적 어려움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피부가 너무 가려워 ‘온 몸의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지경이라면 당장 집중이 될 리가 없고, 안절부절 못하겠죠. 수면이 방해를 받아서 정신이 멍해질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러한 영향과 떼어서 생각하더라도 아토피와 ADHD를 동시에 가진 아이들이 꽤 있어 궁금증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 ‘피부질환과 정신건강’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던 중에 둘의 관계성에 대한 문헌을 여럿 찾게 되었고 이번 칼럼에서는 그 내용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둘은 대표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발생한다고 알려진 질환들입니다. 먼저, ADHD는 주요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 중 하나이며, 학령전기에 시작하여 흔히 학령기에 진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토피 역시 어린 시절부터 발병하는 질환으로, 유아기의 아토피 피부염에서 후기 소아기 알레르기성 비염 및 천식으로 이어지는 아토피 행진(atopy march)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병인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관여하는 다양한 인자들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들에서 두 질환의 공존성(comorbidity)에 대하여 이야기해왔는데요, 아토피 질환을 가진 아이들에서 ADHD의 발병률이 더 높았으며, 아토피 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ADHD 아이들에서 ADHD 증상의 심각도가 더 높았습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서 역치 하의 ADHD 증상이 더욱 자주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어떠한 경로로 이러한 공존이 일어날까요? 다음으로 설명드릴 세 가지 내용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입니다.
첫 번째,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 중 하나로 이른 시기 아토피의 발병-만성화가 신경면역학적 경로(neuroimmunological pathway)에 의하여 ADHD 발병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아토피 질환은 면역 반응을 포함한 염증을 유발하는데요, 이것이 ADHD 병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과 전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의 신경활성도와 성숙(maturation)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직접적 효과 외에도 여러 염증성 사이토카인(cytokine)들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ypothalamic-Pituitary-Adrenal, HPA) 축을 교란하고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의 대사를 변화시킴으로써 해당 뇌영역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ADHD의 발병은 아이를 아토피 질환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ADHD의 발병은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요, 이로 인해 과잉보호나 불안, 지지의 부족과 같은 건강하지 못한 부모-자녀 관계가 맺어질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소양감, 피로, 수면의 질 저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의 심리사회적 어려움은 아동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런데 전두엽 피질은 초기 소아기의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의 스트레스는 여러 신경전달물질과 신경내분비계(neuroendocrine system)의 균형을 깨뜨리며 결국 뇌 발달과 성숙에 영향을 미쳐 ADHD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세 번째, 아토피와 ADHD 아이들은 두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하나 이상의 위험인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위험인자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유전적 인자(genetic factor)와 산전 스트레스입니다. 예를 들어 STAT6(TH2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주요 물질)를 인코딩하는 유전자는 당연히 아토피와 관련이 있으면서, ADHD 병인에서도 주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산전 엄마의 스트레스는 태아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기능이상으로 이어지며 이는 ADHD에 취약한 뇌발달로 이어지는데 이와 비슷한 모델이 아토피에도 존재합니다. 지속되거나 심한 모성 스트레스의 결과로 태아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의 과다활성이 일어나며 이것이 “아토피에 걸리기 쉬운(atopy-prone)” 면역체계를 발달시킨다는 것입니다.
앞서 아토피와 ADHD가 어떻게 동반 이환 되는지에 대한 가설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아토피 질환이 있다고 무조건 ADHD가 공존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당장의 아토피 증상으로 인해 동반된 현상들을 ADHD로 오해(예를 들어 너무 간지러워서 아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과잉행동으로 본다거나)하지 말아야 하며, 명확한 감별을 통해 추가로 ADHD 진단이 가능할지에 대한 면밀한 평가는 당연히 동반되어야 합니다. 다만 여러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아는 것은 임상환경에서 치료 전략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지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이 아토피를 치료받듯 ADHD 역시 자연스럽게 치료받는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ㅣ 원근희 전문의
경북권 게임과몰입힐링센터 부센터장
대구가톨릭Wee센터 부센터장
서울대학교병원 전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