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모임 자리에서 사진 찍기에 바빠 정작 친구와 대화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실시간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경험하기보다는 나중에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경험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기억하는 분이 있으실 겁니다. 1998년 인기를 누렸던 배우 한석규가 출연한 CF 광고의 카피 한 줄로, 한석규 배우가 어느 절에서 대나무 숲을 거니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인 오늘날에 이 카피는 더욱더 필요한 문구가 된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인지과학자이자 명예교수 도널드 노먼은 저서 『방향 지시등은 자동차의 표정이다(Turn Signals are the Facial Expressions of Automobile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보다 기록을 우선시하는 것은 상황을 충분하게 기억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에는 중요한 행사, 자녀의 졸업식, 식사 자리, 여행 동안에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촬영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연극이나 콘서트에서도 촬영을 하는 데 집중하느라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도널드 노먼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기록을 우선하다 보면 머리와 마음 속에 추억을 남기는 작업이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실제로 우리는 경험보다 기록에 주의를 기울일 경우 그 상황을 온전히 기억하고 인출하는 것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디지털로 저장되는 기록들 역시 수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기억력과 마찬가지로 기억매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촬영 장애 효과(Photo-taking impairment effect)’라고 하는데요, 이 현상은 미국 페어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린다 헹켈에 이 일상의 경험을 모두 기록하는 습관이 실제의 경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린다 헹켈 교수는 2014년 연구 『박물관 투어를 하는 동안의 사진 촬영이 추억에 미치는 영향(Point-and-shoot memories the influence of taking photos on memory for a museum tour)』을 진행하기 위해 연구 참가자들에게 미술관에 가서 예술 작품을 관람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총 30점의 예술 작품을 보는 동안 15점은 사진을 촬영하도록 하고 나머지 15점은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한 결과, 사진을 찍은 작품보다 찍지 않은 작품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헹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가 자신의 기억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지요. 이 지적은 우리가 그 순간에 기억하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실시간으로 표현하고 지속하는 경험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라이언트(Bryant. F.B) 등은 『긍정적인 경험의 새로운 모델(A new model of positive experience)’』이라는 연구를 통해 현재의 경험에 충실하게 집중하고 즐기는 것은 긍정 정서를 더 많이 느끼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밝혔지요.
우리는 소중한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과 대화로 기억을 상기해 보세요.
중요한 순간들에 열심히 사진을 촬영하기보다는 함께 웃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다르게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발견에 다시 좋은 감정들이 누적되어 새롭게 시간이 해석되는 경험을 충분히 반복해 보세요.
둘째, 여행을 할 때 종이 지도를 이용해 보세요.
지도로 방향만을 확인하고 온전히 걸음걸이와 함께하는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해 보세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놓쳤던 아름다운 풍경, 대화, 소리 등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미리 알지 못했던 길을 따라가 본다면 우리 뇌는 더욱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요.
셋째,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공책에 기록해 보세요.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지만, 특별한 순간에 아날로그 방식의 기록을 사용해 보세요. 잠시 시간을 내어 공책에 기록을 하거나, 필름 카메라를 활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길 권합니다. 그 기록을 꺼낼 때마다 조금 더 입체적으로 기억되고 추억되는 과정을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매체에서 벗어나 조금 더 집중하고 기록할 수 있는 여러분만의 방식을 찾아보세요. 함께 추억을 만들고 다시 나누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은 강화되고 아름답게 재창조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것은 행복을 온전히 얻어내는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록이 남는다고 해도, 그 순간 온전히 주변 사람들과 나눈 행복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순간들이 가치 있게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