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종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COVID-19를 거치며 우리는 비대면을 기반으로 한 배달 어플리케이션에 쉽게 길들여졌습니다. 자동 결제와 배달 시스템 덕분에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먹고 싶었던 음식이 단숨에 내 앞에 도착하는 편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배달 앱의 화려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는 온갖 종류의 음식과 디저트에 손을 뻗치게끔 유혹합니다. 편의성을 기반으로 한 기술은 우리에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요리하거나, 애써 식당을 가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건강한 식사 습관의 조건에는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하고, 알맞은 양을 섭취하며,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하며 충동성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ADHD의 특성은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식이장애(거식증, 폭식증)의 비율이 높습니다. 

ADHD를 진단받은 사람이 흔히 갖고 있는 특징인 충동성이 식사 습관에서도 나타나 폭식을 자주 하게 되고 불규칙한 식사로 이어집니다.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덜 맛있는 음식보다는 건강에 나쁘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주로 섭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ADHD를 진단받은 사람은 흔히 수면장애가 있는데, 잠을 못 자면 코르티솔과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방출되어 식사량을 조절하는 능력이 약해집니다. ADHD를 진단받은 사람에게 식사 문제까지 겹치면 우울감이 악화할 수 있고, 이는 충동성과 식이 문제가 심해지는 데 기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배달이라는 기술의 혁신은 장점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ADHD를 진단받은 사람에게 배달 앱은 불건강한 식사 습관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요리해야 했거나 식당을 방문해야 했던 허들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쇼핑하는 것처럼 꼭 먹지 않아도 될 때도 배달을 시킬 수 있고, 지나치게 자주 시킬 수도 있습니다. 

혼자 먹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양을 시키거나, 경제적 사정에 비하여 지나친 돈을 배달 비용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한편, 배달 앱의 문제는 음식 조절 문제에 스마트폰 중독까지 얽혀 있습니다. 배달 앱에 접속해 음식과 식당을 둘러보기만 해도, 백화점을 구경하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UX/UI를 꾸며 놓은 이유일 것입니다. 배달의 세상은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는 한층 더 취약한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달 앱의 문제에 있어서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원칙은 ADHD 약을 잘 복용하는 것입니다. ADHD 약은 건강한 식사 습관을 만들어 가고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의 시작이자 기본 조건입니다. ADHD 약은 배달 앱을 켜고 나서도 한 번 더 고민하게끔 여유를 주고 식사와 관련된 충동성을 줄여줍니다. ADHD 약이 식욕을 저하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과식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아침, 점심, 저녁 정해진 식사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긴 공복 시간은 우리를 허기지게 만들고, 식욕을 조절하는 능력을 취약하게 해서 결국 다시 배달을 참지 못하거나 과식할 위험이 커집니다. 과식은 후회와 자책을 낳고, ‘다음에는 과식한 만큼 덜 먹어서 균형을 맞추겠다.’는 마음과 절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식사량을 줄이다 보면 ‘식사해야 한다.’는 뇌의 신호가 강해지고, 결국 과식과 폭식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끼 정해진 식사와 정해진 식사 사이에 적당량의 간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를 완벽하게 통제하겠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식사량, 식사 습관과 목표대로 식사했는지 여부에 대해 몰입하게 합니다. 식사는 성공과 실패라는 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절식은 성공, 과식은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때로는 식사량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불건강한 음식을 즐깁니다. 건강하지 못한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용서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배달 앱을 켜고 고민하고 있거나 과식할 것 같은 위기 상황, 식사와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현재의 나에 집중하는 마음챙김의 기술을 시도해 보거나, 감각이나 주변 사물에 집중하며 주의 분산을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챙김을 통해 식사, 스마트폰 사용에 거리를 두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무언가를 먹으며 보냅니다. 먹기 위해서는 미리 재료를 계획하고, 손질하고, 요리하는 방법 밖에는 없던 과거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여도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여유와 편리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배달이라는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기 위해, 삶의 가장 즐거운 일을 지켜 나가기 위해, 우리는 기존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역설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서울온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종명 원장

김종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전) 보건복지부 지정 행동발달증진센터장
전) 성남시 소아청소년정신건강복지센터장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