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사물이 작동하는 모습, 아마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라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이뤄진다면 믿으실 수 있을까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일들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란, 서로 다른 시스템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의미하는데요. 주로 사물과 사물 사이의 정보 전달에 집중되었던 인터페이스 분야가 최근에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 사이를 연결하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Human-Computer Interface)의 한 분야라고 볼 수 있으며, 1970년대부터 연구가 진행되어 해외에서는 미국 고등국방연구소(DARPA)와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연구기관, 대학, 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 개발이 꾸준히 이루어졌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측정하는 부위에 따라 크게 침습적 방식과 비침습적 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침습적 방식은 뇌에 직접 칩을 삽입하여 뇌파를 측정하는 것으로, 외부의 잡음이 섞이지 않아 보다 정확하게 뇌파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과적 시술을 통한 마이크로칩 삽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안전성, 부작용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비침습적 방식은 머리 표면에 헤드셋이나 헬맷 등을 연결해 외부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것으로, 별도의 시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잡음이 섞일 수 있기 때문에 뇌파 측정에서의 정확도가 침습적 방식만큼 높지는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침습적 또는 비침습적 방식을 통해 뇌파를 측정할 준비가 되면, 뇌파 유도 방식 또는 뇌파 인식 방식을 통해 뇌파를 측정합니다. 뇌파 유도 방식은 목표로 삼는 특정한 뇌파가 발생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측정 대상자가 별도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에 반해 뇌파 인식 방식은 사용자가 실제로 생각하거나 의도한 바를 있는 그대로 측정해서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뇌파를 측정하고, 그중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하고 정확한 분석을 위해 뇌파를 증폭시키는 전처리 과정을 거친 후, 다른 샘플과 비교 분석하여 컴퓨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계에 실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 결과, 직접 몸을 움직이거나 기계를 만지지 않아도 뇌에서 생각한 대로 기계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죠.
얼마 전에는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사람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3년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후 참가자를 모집해 처음으로 이식을 진행한 것인데, 환자가 건강하게 회복하고 있으며 뇌에서의 신경 신호도 잘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칩의 이름은 ‘텔레파시’인데, 생각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소통할 수 있는 초능력을 뜻하는 텔레파시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립니다.
머스크는 이 기술의 개발을 통해 루게릭병을 비롯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생각만으로 휴대폰, 컴퓨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계를 조작할 수 있으리라 낙관했습니다.
뉴럴링크뿐만 아니라 의료, 군사, 자동차,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그 적용 범위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긍정적으로 활용된다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환자들을 돕고, 자율주행과 무인 군사 시스템을 통한 국방력 강화, 소비자들의 니즈를 직접적으로 파악하여 마케팅 효용 상승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윤리적, 철학적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뉴럴링크의 실험과 관련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 이전에 이루어진 동물 실험에서 칩을 이식받은 원숭이 중 일부가 발작, 마비 등의 증상을 보였다는 내부 고발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칩 이식에서도 안전성에 관한 우려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또, 인간과 기계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윤리적 문제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로봇과 인간이 결합된 새로운 종에 의한 사회문제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의 뇌를 직접 연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컴퓨터에 저장되고 우리의 의도를 컴퓨터가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이 다른 사람의 뇌에 그대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세계적인 석학이나 유명한 운동선수가 가진 지식을 그대로 전수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것 같은 행운일 수도, 또 인류의 발전을 위한 축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또, 인간과 기계가 결합되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그로부터 누릴 수 있는 것 역시 많아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선 윤리적, 철학적 성찰과 논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뇌와 기술의 결합,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술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고유성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되지 않도록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명제 원장
의사 국가고시 인제의대 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행평가 전국차석
5개대 7개병원 최우수 전공의상(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인제대, 을지대, 서울의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