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언어를 듣고 배우며, 그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 즉 외국어를 배우는 경험은 단순히 말과 글을 익히는 것을 넘어 우리 뇌와 삶에 깊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언어는 주로 좌뇌, 특히 말하기와 문장 구성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 이해와 의미 해석을 관장하는 베르니케 영역 등에서 주로 처리됩니다.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이 두 가지 영역을 넘어서 더 많은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데요. 낯선 언어의 소리, 단어, 문법, 문장 구조, 문화적인 표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뇌의 여러 영역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언어와 관련된 뇌의 전체 네트워크가 활성화됩니다.
특히 성인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배울 경우, 뇌는 기존의 익숙한 회로만 쓰지 않고 새로운 인지 요구에 맞게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합니다. 영국 런던대학 신경학연구소의 앤드리어 메첼리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의 좌반구 하두정엽 피질인 회백질 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언어 사용자보다 뇌 연결성이 높고, 특히 소뇌와 좌측 전투 피질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뇌가 스스로를 재구성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현상은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불리웁니다. 이처럼 외국어 학습은 단순한 언어 능력 향상을 넘어, 뇌 전체의 유연성과 인지 기능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 여러 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동안 다른 언어를 통제해야 하므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뇌의 작업 기억 능력과 집행기능이 더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후 외국어를 배울 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언어는 어릴 때 배워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실제로 아이들은 두 언어를 하나의 언어 체계처럼 받아들입니다. 뇌가 유연하고, 언어 관련 신경회로가 활발하게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인은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를 바탕으로 이해하고 습득하기 때문에, 문법 구조나 발음 등에서 기존 언어의 영향을 받는 전이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언어의 뉘앙스와 문맥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데 뛰어난 반면, 성인은 논리적인 문법 규칙이나 어휘를 빠르게 암기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습 초기에는 성인이 더 빠른 진전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배운 아이들이 더 높은 유창성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뇌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아이의 뇌는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유연성은 점차 감소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 언어 습득이 더 쉽다는 점을 너무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인기에는 언어 습득이 어렵다고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인은 풍부한 지식, 자기주도 학습 전략, 동기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만 있다면 충분히 외국어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언어는 곧 문화이고, 사고방식이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 속에 깃든 고유한 세계를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낯선 언어로 인사를 건네고, 그 나라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감동을 줍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막막하게 느껴졌던 이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시야도 넓어집니다.
우리는 때로 외국어를 통해 예상하지 못한 기회나 인연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여행 중 낯선 사람과의 짧은 대화, 업무적 미팅이나 일상에서의 만남, 외국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배우기도 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어는 새로운 세상과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해줍니다. 어떨 때는 언어의 차이를 넘어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하면서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이처럼 외국어 학습은 언어 실력만 아니라 뇌와 정서에도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우리의 생각과 경계를 넓혀줍니다. 다양한 언어 자극을 받으며 뇌의 여러 부위가 함께 작동하고, 기억력, 문제 해결력, 전환 능력 등 인지 기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 뇌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렵고 오래 걸리는 과정일 수 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나이는 그렇게 큰 장애요인이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꾸준한 실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새로운 언어 습득에 도전하며 오늘 한 단어, 내일 한 문장을 배우며 쌓아가는 경험을 하다 보면 언젠가 더 넓은 세상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어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는 통로입니다. 매일 한두 단어씩이라도 꾸준히 외국어를 배워보시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명제 원장
의사 국가고시 인제의대 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행평가 전국차석
5개대 7개병원 최우수 전공의상(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인제대, 을지대, 서울의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