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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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난 왜 이렇게 게으르지?”라는 자책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은 분이 이런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고,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넌 왜 이렇게 의욕이 없니”, “더 열심히 해 봐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현상이 반드시 의지의 문제, 즉 ‘게으름’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무기력,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노력만으로, 또는 자기 비난으로는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뭔가 하고 싶지 않거나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게으름’과 ‘우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듯 보이곤 하는데요. 게으름은 무엇인가를 ‘하기 싫어서’, 또는 쉽고 편한 것을 택하는 성향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반면, 우울증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의지가 아예 바닥나 있는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즐거워하던 일에도 흥미나 기쁨이 사라지고, 예전에는 평범하게 해냈던 일조차 벅차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하기 싫다’ 보다 ‘아예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우울증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만성적인 무기력과 실행력 저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식사를 거르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는 생활, 집중력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아지는 모습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게으르다”, “노력하지 않는다”라고 오해받기 쉽습니다. 특히 ‘비정형 우울증’ 양상이 나타나면, 밖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에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집에서는 극도로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 ‘게으른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피하거나 미루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거나 원했던 일에는 여전히 즐거움을 느끼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의 무기력과 큰 차이점은, 우울증에서는 좋아하던 일마저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삶에 대한 흥미 자체가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게으름’ 자체가 성격적 한계라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거나, 오랜 기간 부정적 평가를 경험한 분들은 자신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 중에는 학습장애, 난독증, 주의력결핍장애(ADHD) 등 실제로 뇌의 기능적 특성으로 인한 문제로 일상에서의 적응력이나 실행력이 낮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생물학적 측면이 아닌 ‘의지’나 ‘게으름’ 문제로 보면서 치료나 변화를 위한 개입이 늦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만성 스트레스나 번아웃(탈진) 역시 업무 능력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를 유발합니다. 이 경우, 무기력함의 원인은 ‘게으름’이 아니라 신체적·정서적 에너지의 고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게으르다”, “노력하지 않는다”라고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기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은 낮아지고, 문제가 악화됩니다. 비난보다는 지금 내 컨디션과 감정이 어떤지, 노력해도 잘 안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게으름과 무기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자신의 감정과 신체 상태를 점검하세요.

 게으름을 넘어서 반복적인 무기력, 일상에 대한 흥미나 활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우울증 또는 정서적, 신체적 소진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2. 강점에 집중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보세요.

 많은 분이 “더 잘해야 한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자신에 대한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합니다. 내 장점, 사소한 성취도 스스로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물론 강점은 동기부여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초반에는 강점을 동기부여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강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태도는 자아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삶의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3. 당장의 변화를 강요하지 마세요.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단기간에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압박할수록 오히려 무기력감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조급하게 완전히 바뀌려고 애쓰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변화와 쉬는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세요.

4. 불필요한 자기 비난을 멈추세요.

 게으르다고 생각되는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반복된 실패 경험, 낮은 자존감, 만성 스트레스, 신체적·정신적 질병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인을 찾기 전까지는 함부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5.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아닌지 살펴보세요.

 충분한 휴식에도 불구하고 무기력과 의욕 저하, 즐거움 상실, 수면장애, 식욕 변화, 대인 기피 등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오래 계속되거나, 번아웃과 삶의 흥미 상실이 반복된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게으름은 때로는 잠시 쉬라는 신호일 수 있고, 어떨 때는 마음의 병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서 쉽게 ‘의지가 없다’ 혹은 ‘게으르다’라고 단정 짓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은 감정과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도움을 요청할 때,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누리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명제 원장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국가고시 인제의대 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행평가 전국차석
5개대 7개병원 최우수 전공의상(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인제대, 을지대, 서울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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