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출근길 지옥철이다. 역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오늘도 역시 산소가 부족하다. 겨우겨우 환승역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어떻게든 타려고 꾸역꾸역 들어온다. 

‘아니, 저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요!’ 

1차로 화가 치민다. 겨우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걸어가는데, 이번엔 마주 오는 사람들과 자꾸 어깨가 부딪힌다.

‘근데 왜 앞을 똑바로 안 보고 휴대폰만 쳐다보면서 가지? 그리고 부딪쳤으면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2차로 화가 치민다. 드디어 도착이다. 9시까지 5분 남았다. 서둘러 역을 빠져나왔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저건 뭐지? 비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하는 건지, 내가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안에서 자꾸 치밀어 오르는 이 불길함을 어떻게 하면 잠재울 수 있을까?

 

한때 ‘한국인의 4대 문장 시작 요소’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한국인이면 ‘아니, 근데, 진짜, 솔직히’를 쓰지 않고서는 문장을 시작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한 이 유머 속 단어들은 우리의 대화 속에 늘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런데 이 네 단어가 특히 많이 쓰이는 때가 있다. 바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이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어떻게’이다. “아니, 팀장이라는 사람이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숨 쉬듯 익숙한 예문일 것이다. 질문의 형식이긴 하지만 진짜 질문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표출을 위한 문장이다. ‘아니’에서 시작해서 ‘어떻게’로 이어지는 이 문장 속 감정은 한마디로 ‘분노’다. 의문을 가장한 분노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분노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마음속 신호다. 만약 억울한 상황에서도 화가 전혀 나지 않고 평온하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노를 지나치게 자주, 오래, 강도 높게 느낀다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지나친 분노는 도리어 우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해도 더 큰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차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뭘까?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 전에 당신의 분노는 어떤 성격인지부터 알아보자. 아래 두 가지 생각 중 당신이 해당되는 설명은 무엇인지 골라 보자.

 

①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타는 일은 존재할 수 없다.

②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고 난 후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타면 좋겠다.

 

첫 번째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세계관)이고 두번째는 타인과 세상을 향한 소망이다. 물론 둘 중 어떤 것이 좌절되어도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소망이 깨질 때와 달리 세계관이 깨질 때 더 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것은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이미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관을 벗어나는 일은 대개는 예상 밖이다.

세계관이 공고한 사람은 그래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질 때마다 세상이 잠시나마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망이 배신당한 것이라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속상할 수는 있으나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분노의 직전 감정이 대부분 ‘위협감’임을 기억한다면 세계관이 무너질 때 왜 그토록 분노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려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밀고 들어오는 익명의 타인들, 업무보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일을 망쳤으면서 도리어 내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팀장은 세상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리라는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은 곧 위협이다. 그리고 우리의 보호 본능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분노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그래서 분노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세계관이 좌절되면서 느꼈을 위협감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 그런 뒤 최종적으로는 세계관의 좌절로부터 소망의 좌절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위협감의 크기가 줄어들고 따라서 분노의 크기도 줄어들 수 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분노에는 자격이 필요 없다

그렇다면 이미 분노를 느껴버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화가 났다는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 보통 ‘이게 지금 화날 일이 맞나?’라는 생각으로 빠져들면서 분노의 정당성을 검토한다. 그러느라 정작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 자체를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에는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분노의 순간 가장 확실한 하나의 사실은 지금 내가 뭔가 언짢고 화가 난다는 것, 그것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분노를 재빨리 받아들여 최대한 나를 잘 보호하는 방향으로 활용하거나 조절하는 것이다. 내 몸이 보내는 즉각적인 신호는 나의 분노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단서다.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몸이 딱딱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목소리가 떨리거나 침이 꿀꺽 넘어간다면 그건 내가 지금 화가 났다는 강력하고도 확실한 신호다.

여기까지 파악이 됐다면 무조건 단 1분이라도 시간을 벌자. 30초도 좋다. 화가 난 바로 그 순간 상대의 말을 화려하게 받아치거나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더 나을 때가 많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무언가 행동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때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을 버는 방법은 마음이 평온할 때 미리 생각해 두자. 달달한 과자를 먹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거나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오는 것도 좋다.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단순한 방법은 숨을 천천히 크게 쉬는 것이다. 혈압, 맥박, 체온, 호흡 중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생체 신호인 호흡을 천천히 함으로써 몸 전체에 ‘이제 진정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지나가는 행인 1이 또 주인공을 괴롭히네.”, “내 인생에서 그다지 가치 있지 않은 사람 때문에 나의 우아함을 잃을 필요는 없지.”처럼 화가 났을 때 바로 떠올릴 만한 한마디를 평소에 생각해 놓는 것도 좋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이쯤에서 이번에는 화가 나는 상황 자체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고민해 보자. 우리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할 만한 수단을 마른걸레 쥐어짜듯 최대한 강구해야 한다. 출근길 지옥철을 벗어나기 위해서 출근 시간이나 교통수단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이것도 너무 빠르게 포기하지 말고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자) 익명의 무례하고 무심한 타인들 속에 계속 놓여야 하는 나 자신을 필사적으로 위로하고 달래야 한다. 이어폰을 껴서 심리적인 공간을 확보하거나 무사히 출근한 후 마실 커피 한 잔이나 달콤한 초콜릿을 떠올려도 좋다. 물론 지옥철은 쉽지 않겠지만 다양한 고민을 해보는 시도 자체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분노가 앞에서 말했던 세계관의 붕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데 동의한다면 세계관을 수정해 보자.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무례함에, 이기심에, 무심함에 무력하게 굴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으로부터 나를 잘 지켜낼 수 있다. 분노 속에 감춰진 나의 세계관과 소망을 알아챈다면, 그러면서 계속해서 세계관은 수정하되 소망은 간직한 채로 나아간다면 분명 언젠가 ‘분노는 나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반유화 원장

『출근길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에서 발췌·편집했습니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학과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강사
(전) 나눔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전) 호암병원 부원장, (전) 연세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저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들의 상담실>
전체기사 보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