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현재 7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같이 산 지는 3년 정도 넘었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리고 아직 학교를 다니는 친구예요. 이 친구와는 사실 오래전부터 결혼 생각은 없었어요. 연애하면서 워낙 여자 문제가 많았고,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왜 그때 진작 헤어지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어요. 

제가 요즘 이 친구와 떨어져 부모님과 함께 몇 달 지내다 보니 온전히 저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서 다시 돌아가면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는 제가 이 친구랑 함께한 시간이 오래이다 보니 헤어질 생각을 하면 눈앞이 막막해요. 바쁜 와중에 집도 구해서 나가야 하고, 짐도 싸야 하고, 무엇보다 얼굴 보고 헤어지자고 말할 생각을 하니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이 친구랑은 정말 모든 면에서 잘 맞았어요. 다정하고, 잘 맞춰 주고, 무엇보다 한결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불미스럽고, 저를 아직까지도 때때로 괴롭히는 일들이 있었을 때도 헤어지지 못한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 심지어 그 친구의 친구들마저도 저에게 헤어지는 게 맞다고 해 줬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당시엔 이 친구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컸어요. 지금 제 생각은 확고해요. 이제 저도 제 주변에 가정을 이룬 친구들이 많고, 저도 더 이상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없는 이 친구랑 계속 만나는 게 무의미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뵈러 올 때마다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고 그러네요. 그래서 올해 안으로 꼭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곧 다시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제가 마음먹은 대로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따끔한 조언이 필요합니다. 낮엔 굳게 마음먹다가도 저녁만 되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싶고… 속상하고 그러네요. 마음이 약해지고 싶지 않아요. 저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마음먹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가지 저에 대해 더 말씀 드리자면, 저는 이전의 연애에서도 제가 마음먹고 먼저 상대방에게 헤어지자고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애썼거나 마주하고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항상 피했던 것 같아요. 직장도 그만둬야지… 몇 달을 그러다가 결국 핑곗거리가 생겨서 그 계기로 나왔습니다.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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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7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와 이별을 결심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사연을 올려 주셨네요.

사연자님께서 남자친구와 함께한 7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물리적으로도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 없는데요,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남자친구와 함께한 좋은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들이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결심한 지금 이 순간,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머뭇거리고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사연에 적어 주신 것처럼 남자친구와 모든 면에서 잘 맞고, 다정한 성격에 사연자님께 잘 맞춰 주었다고 하니 비록 다른 여자 문제로 사연자님의 속을 썩였을지언정 사랑받는다는 느낌, 누군가 곁에서 지켜 주고 있다는 느낌에서 안정감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서 사연에 밝혀 주셨듯이 지금의 남자친구와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그러니까 결혼 상대자로는 아니라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해 오셨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별을 결심한 지금이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에 적당한 시기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미래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기도 한 ‘신뢰’ 부분에 있어서 지금의 남자친구는 사연자님께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죠.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신뢰 문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만약에 지금의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거나 결혼에 골인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결혼 이후에는 남자친구가 더 이상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신뢰로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 기억이 더 이상 사연자님을 괴롭히지 않고 또 온전히 남자친구를 믿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혼은 연애와 또 달라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들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러한 난관들을 함께 극복하며 오랜 세월 서로의 곁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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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남을 이어 가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를 알고 잘 놓아 주는 것도 우리 인생에서는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불가피한 것처럼 이별 역시 불가피할 수밖에요. 

그러나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만큼 그와 이별하는 과정이 사연자님께는 많이 힘들고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별을 결심한 이상 이 또한 사연자님께서 감당하고 겪어 내야 할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이 시간을 통해 한층 더 내면이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연애를 통해 사연자님께서 자기 자신이나 사랑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지, 다음번 사랑이나 인연을 만날 때는 어떤 점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고려하면 좋을지, 어떤 사람이 자신과 잘 맞고 또 평생을 함께할 만한 사람인지 등등 지나간 사랑과 다가올 사랑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런데 사연자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인상적인 내용이 있는데요, 이전 연애에서도 사연자님께서 먼저 헤어지자고 한 적이 없었다고 적어 주신 부분, 말이죠. 그리고 이별을 말하려 할 때,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이기적으로 마음먹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적어 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이전 연애에서 한 번도 상대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없어서 먼저 이별을 이야기한 적이 없던 것인지, 아니면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도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차마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했던 것인지 말입니다. 적어 주신 내용의 흐름상 후자일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요,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항상 피했던 것 같다고 하셨고, 또 상대에게 이별을 이야기하는 게 이기적으로 마음먹는 거라고 언급했던 부분에서 이러한 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이와 관련해 사연자님께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인생의 수많은 선택, 그중에서도 만남과 이별과 같이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하는 선택은 언제나 상대보다는 ‘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택을 결코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리고 그러한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 비록 두렵고 아플지라도 그것을 한없이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고, 언젠가 해야 할 결정을 제때 하지 못했던 대가를 나중에 더 크게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성취와 실패, 행운과 불운,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누구나 인생에는 크고 작은 일들과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는 순간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과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사연자님을 이루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껴안으며, 사연자님을 힘들게 하는 많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연을 통해서 사연자님께서는 한 사람을 7년간 사랑하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장의 이별이 무척이나 슬프고 또 고통스럽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별에 임하신다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인생의 새 페이지를 써 나가실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제인 오스틴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습관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잘 알아보고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새로운 인연을 성급히 찾기보다는 사연자님의 내면을 성숙시키고 홀로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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