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예체능 쪽으로 취업 준비 중인 97년생 청년입니다. 현재 그림 분야로 2년 반 넘게 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열등감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최대한 빨리 자리 잡고 싶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발악한들 저는 늘 남보다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실력적인 부분은 성장하는 것이 보이지만, 제가 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잘하면 잘할수록 ‘그래서 돈 벌어, 못 벌어? 업계에서 인정받아, 못 받아?’ 하는 식의 내적 의문이 들고, 그럴 때마다 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어서 무너집니다.

이런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나보다 어떻게든 잘하는 사람들을 향한 질투와 시기를 넘어 분노와 절망, 살인, 자살 충동까지 들게 됐습니다. 때문에 현재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모든 부정 편향 사고를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에 맞서기 위해 늘 마음이 처참히 찢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약물치료에 따라 머릿속이 조금 건강해진 듯 싶으면 다시 열정적인 자세로 임하려고 하지만, 항상 그래 왔듯이 업계인들의 실력을 보면 ‘저 사람들 손목을 다 자르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 없으며, 몸으로도 스트레스 반응이 생기고, 저 스스로한테라도 이런 발악이라도 들어 줘야 조금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고, 펜을 잡을 때마다 자존감이 너무 떨어집니다. 정신에 좋다는 온갖 것들을 해 봐도 결국 업계 사람들의 실력을 마주하면 ‘잘못 살아온 것 같으니 게임 캐릭터를 지우는 것처럼 인생을 삭제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수렴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저주하는 업계 강사가 심리상담 관련 콘텐츠를 올렸습니다. 시청자가 사연을 올리고 강사가 답변하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저에게 답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의 소중한 가치관과 사고방식,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을 전문가도 아니면서 너무 거만하게 피드백하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사람의 신상 정보를 알아내어 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죠.

사실 이런 생각들은 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논리에 비약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모순이 있다는 것, 감정의 책임 소재는 저에게 있고, 상대가 내 기분을 상하도록 의도한 것도 아니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모두가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렇게 알고 있어도 생각이 고쳐지지 않아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종종 떠오를 때가 있어서 괴롭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떤 삶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가슴이 설렜는지 등을 생각해 봤고, 주변 사람들로 인해 훼손된 가치관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나 연구가들이 쓴 책들도 읽고 제 생활에 적용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지라는 걸로 되지 않는 게 분명히 있었고 그렇기에 현재 5개월 가까이 약을 먹고 있지만, 새롭게 노력할 때마다 마음은 늘 한결같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신과 담당 의사 분께서는 심리상담을 계속 권장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없기에 급한 대로 여기다 글을 써 봅니다. 제가 자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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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힘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작성해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그림 분야에서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고 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노력해 보았지만, ‘늘 남보다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심적인 고통감이 깊으신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예체능 쪽 분야가 특히 소위 ‘잘나가는’ 사람이나 유명세를 떨치는 분들과 묵묵히 예술 작업에 전념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분들 사이에 대우나 벌이 측면에서 그 편차가 꽤 큰 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사연자님께서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많이 느끼고, 업계에서 하루빨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예술 작업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고 민감한 감각들을 요하는 측면이 있고, 이러한 직업적 특성상 사연자님의 감수성과 감정이 더욱 발달되어 온 부분도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섬세함과 예민한 감각들이 예술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일상생활이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균형적인 사고를 유지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 그간 그림 작업을 할 때마다 받았을 외부로부터의 평가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타인과의 비교나 평가에 더욱 민감해진 부분도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사연자님처럼 이렇게 예술 쪽에 종사하는 분들의 경우, 자신이 하는 예술 작업에만 골몰하다 보면 다른 인생의 여러 측면들을 놓치기 쉬운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힘든 고민이 있거나 속상한 마음을 주위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털어내거나, 또 울적한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것도 서툴고 어색하게만 느껴지기도 할 것 같고요.

우리의 인생은 성취적인 영역, 직업적인 영역, 관계적인 영역, 경제적인 영역, 사회적인 영역, 인간 내적인 영역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가운데 한 가지 부분에만 모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균형 잡힌 생각과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유독 직업적인 영역과 성취적인 영역에 가치와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무엇이, 또 어떠한 이유로 인해 사연자님께서 이토록 직업적인 성공이나 성취적인 측면에 집착하게 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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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성장 과정에서 형제들과 항상 비교를 일삼던 부모님이 계셨거나, 친한 친구들의 ‘잘난’ 부분과 자신의 ‘못난’ 부분을 스스로 비교하는 습관이 있었거나, 유독 남들과의 비교나 가혹한 평가가 만연한 업종에 종사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무척이나 까다롭고 엄격한 성격적 특성 등등. 혹은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열등감에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연자님께서는 유독 어떤 이유로 인해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이유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지 간에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당장에 이룰 수 없는 높은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깎아내리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세운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적인 내 모습’의 괴리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더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간적인 장점이나 관계적 측면, 그동안 성취해 오거나 노력해 온 부분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긍정하지 못하고, 현재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나 ‘성취’와 거의 동일시하며 찾는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이 스스로를 더욱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사실 열등감을 느끼는 감정의 이면에는 완벽해지고자 하는 충동과 자신의 단점이나 취약한 점은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 무엇이든 최고가 되고 싶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면서 계속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자아도취적이고 자아중심적인 심리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우월감을 갈망하는 것은, 이전에 자신의 우수한 장점이나 실력을 인정받고 만족감을 느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잘난’ 사람들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단 한 사람이고,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만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장점들도 저마다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애초에 ‘나’라는 단 한 사람과 다른 이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겠죠. ‘나라는 개인 대 불특정 다수’라는 공정하지도 않고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채찍질하는 것은 나에 대한 학대에 가깝지 않을까요.

지금 사연자님께 필요한 것은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거나 다른 사람들을 향해 시기와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과 그동안 노력한 노고와 실려에 대한 인정, 자기 위안과 격려,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 좋은 에너지를 채워 주고, 필요한 경우 휴식과 쉼을 허락하는 것 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혹시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에 관해 들어 보셨을까요? 내적 동기란, 사람이 내부적으로 느끼는 욕구, 흥미, 열정, 가치 등에 의해 행동하게 되는 동기로, 외부적 보상이나 벌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 즐거움, 만족감 등이 행동을 주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반면에 외적 동기란, 외부 요인, 즉 금전적 보상이나 칭찬, 다른 사람들의 기대 등에 의해 움직이는 동기를 말합니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우리에게 중요하다거나 필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적 동기든, 외적 동기든 우리의 행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활동을 내적인 동기에서 시작했지만, 중간에 그것을 지탱해 주는 동기가 외적 동기로 변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출발점은 외적 동기였지만 내적 동기가 작동되는 지점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떤 행위나 활동을 지속시키는 데 내적 동기가 약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지금 하시는 그림이라는 분야를 시작할 당시와 그림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현재에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중에 어떤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당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즐겁고, 자신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고, 또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받았던 인정 등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가 혼재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연자님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만약 그림 그리는 작업에 대한 내적 동기나 외적 동기를 많이 상실한 상태라면,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동기를 끌어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신다면 어떨까요.

내적 동기를 향상시키는 데 몇 가지 유용한 방법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게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 주변 환경도 내적 동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자신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환경이나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고, 유튜브나 SNS 등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의 영상은 당분간 접하지 않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또 처음 사연자님께서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순수한 기쁨과 열정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다면, 성취나 성공에 대한 압박,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작업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성취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동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휴식과 이완,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 등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관리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사연자님께서 겪는 혼란과 방황이 헛되지 않고, 사연자님의 그림 작업과 정신적 성장에 자양분이 되리라 믿으며 사연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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