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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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일들을 해 나가는 분들은 때때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돌봄 과업에 몰두하며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거나, 이 환경을 떠나려고 할 때 죄책감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돌봄의 책임을 가지고 계시다면, 스스로의 돌봄을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상처받은 자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되어 가는 분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키론, 상처를 극복한 치유자 

치유 역할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표현에는 키론(Chiron)이라는 행성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키론은 1977년 11월에 발견된 행성으로, 켄타우로스 자리에서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깊은 상처의 치유에 이르는 여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키론에 대한 그리스 신화도 유명하지요. 물의 요정으로도 불리우는 ‘키론’은 평생을 남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데 바친 인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고 돕는 대명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웅들이 키론의 제자이기도 하며, 최고 신인 제우스(Zeus) 조차도 키론을 아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라틴어 계열의 많은 언어는 키론에서 파생된 ‘수술실’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요, 키론은 심리학자와 의사처럼 활약했으며 ‘키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손기술이 노련한 사람’ 또는 ‘손으로 치유하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로부터 치명상을 입었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자의 역할을 해낸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에 의해 재조명되었는데요, 융은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리스 신화의 키론을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직면했던 고통 때문에 치료사가 되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융에 의하면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성직자 등 돌봄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는 가정의 문제를 경험한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자신의 욕구보다는 가족의 안정이나 미해결된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통찰력과 공감 능력을 쌓는다는 것이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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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상처를 통해 상처의 치유자로

‘상처 입은 치유자’의 개념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어 왔는데요, 영국의 상담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앨리슨 바(Alison Bar)는 COSCA(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in Scotland)에 발표한 연구을 통해 상담사나 심리치료사들의 진로에 있어 ‘심리적 상처’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정량적 데이터와 정성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다원적 접근법을 통해, 253명의 대상자를 통해 연구를 실시했는데요, 상담사와 심리치료사의 73.9%가 직업 선택으로 이어지는 하나 이상의 심리적 외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 참여자들이 보고한 심리적 상처의 원인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학대, 가정생활, 정신질환, 사회, 가정생활, 사별,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질환 등이었죠. 

심리학자인 사라 빅터(Sara Victor) 등은 2021년 ‘Only Human’이라는 연구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의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학교심리학 대학원생과 교직원의 82%가 삶의 일부 시점에 정신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심리적 돌봄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정신 건강상의 어려움은 얼마나 빈번히 일어나는지에 대한 내용이 많은 관심을 모았고, 지금까지 많은 연구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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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잘하기 전에 필요한 자기 돌봄(Self-Care)

돌봄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적절히 스트레스에 대처하지 못하면, 소진과 심리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반드시 직업으로서 돌봄이 아니더라도,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따라서, 타인을 돌보기에 앞서 적절한 자기 돌봄(Self-Care)과 소진 예방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죠.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대표적인 불교 명상가 타라 브랙(Brach, Tara)은 35여 년간 위빠사나 상을 수행하고 가르쳐 왔는데요, 그녀는 서양의 심리학과 동양의 불교명상을 결합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마음챙김의 사회적 의미를 살리는 다양한 평화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파도를 일으키지만 파도를 바다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라는 온전한 존재를 ‘바다’라고 볼 때 시시각각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감정의 파도는 ‘나’가 아니다. 파도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 파도를 인식할 때 ‘나’는 고요한 바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_ 타라브랙의 책 《자기 돌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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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 브랙은 책 《자기 돌봄》을 통해서 실천적인 자기 사랑법을 설명했습니다. 이 방법은 미국의 수련자와 수행자들을 위한 위빠사나 명상의 내용을 쉽게 풀어 놓은 방법이기도 한데요, 그가 말하는 네 가지 실천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멈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멈추어야 합니다

2. 살펴보기(관찰): 멈추는 순간에 갈등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대면합니다

3. 보듬기(인식): 진짜 나와 대면할 때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일어나고, 자기 자신을 보듬게 됩니다. 

4. 껴안기: 마침내 타인과 세상을 껴안는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자기돌봄의 시간을 갖고 있으신가요? 돌보는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작업처럼, 자신의 고유함을 알아주는 자기돌봄도 함께 이뤄져야 함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돌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인정하고, 자신의 고유함을 잃지 않는 것이 돌봄의 여정에는 꼭 필요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순간, 여러분을 괴롭히는 생각은 어떤 것인지 떠올려 보세요. 그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떠오르는 마음을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길 추천합니다. 온전히 타인과 세상을 껴안기 위해서 잠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다독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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