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편집자님께 ‘지나치게 예민한 것’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았습니다. 진료실에서도 자주 쓰이는 ‘예민하다’는 표현이니 쉽게 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일이 잘 풀리길 바라고, 사람들 앞에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고, 지적을 받으면 상처 받고, 심하면 자신이 쓸모없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강도와 빈도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에 예민해졌다가 사회생활 경험이 쌓여 가면서 해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우울증에 빠진 시기에만 예민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오랜 기간 성격으로 고착된 경우도 있습니다. 불안정한 양육환경에서 신체적 원인이 없이 배가 아픈 어린이도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예민해지는지 아는 것이 시작 지점이 될 것입니다.
‘지나친 예민함’은 바꿔 말하면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에게 괴로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극이 있어도 이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마음의 상처로 이어질 일이 적을 것입니다. 실제로 외부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내부의 자극에 예민하지 않아 더 큰 외부 자극을 쫓는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예민함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이런 상황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리에 예민한 편입니다. 제 아이가 어릴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를 막기에 물어보니 시끄러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소리에 예민한 것이 유전인 것 같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는 귀를 막지 않고도 엘리베이터를 잘 탑니다. 성장하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고 같은 자극에 노출이 되면서 익숙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른인 저는 엘리베이터 소음 정도는 크게 거슬리지 않지만 기숙사, 기차, 비행기에서의 말소리에는 예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가방에는 작은 귀마개를 휴대하고 있습니다. 예민한 청각에 비해 후각과 미각은 둔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고급 음식의 특별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입맛이 둔하다 보니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 않고 그러다 보니 요리도 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손님 대접을 위해서는 맛집 후기를 읽고 메뉴를 추천받아 대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간단한 자극인 소리와 맛보다 복잡한 사람과 관련된 자극은 어떨까요? 상대의 표정에 예민한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의 표정에서 미묘하게 어두운 느낌을 느꼈다고 해봅시다. 둔감한 사람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서로 웃었고, 정보를 나눴으니 좋은 대화였다고 넘어갔을지 모릅니다. 예민한 사람은 평소와 달랐다고 느낄 것입니다. 혼자서 고민을 지속하다 나와 어울리는 것이 재미없어진 것이 아닐까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친구에게 혹시 마음에 걸리는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문자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며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답장을 받을 수도 있고, 단순히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답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민함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예민함이 언제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많은 자극으로 힘들다면 조절해볼 수도 있습니다. 귀마개로 소음을 막듯이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을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사람이나 낯선 사람이 있는 모임은 줄이고 친밀하고 편한 사람 위주의 모임에만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단절하면 다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민해져 직장에서 힘들 정도라면 일의 양을 줄여보거나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리해서 큰 사고가 난다면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만약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예민한 부분이 건드려진다면 관계를 배워볼 수도 있습니다. 친구 사이일 때는 괜찮았는데 연인이나 부부가 되어 힘들다면 커플의 관계에 대해 배워보는 것처럼 말이죠. 자주 반복되는 걱정으로 인해 예민해진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쉽게 우울해지면서 예민해진다면 우울증에 빠진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취약해졌던 방식을 자주 반복하게 되니 많이 힘들었다면 그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어떤 것이 원인이든 내게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내가 열등한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예민함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인생이 더 풍성해질 수도 있습니다. 맛에 대한 예민함으로 맛없는 음식을 참지 못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예민함으로 상대를 더 잘 배려하는 부모, 선배, 동료, 친구, 연인, 배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6월호에 ‘상처를 잘 받는 부분, 예민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보호하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