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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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최근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부탁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부탁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그 부탁은 수용되었나요, 아니면 거절당했나요? 상대가 흔쾌히 부탁을 들어 주었다면 고마운 마음이 들고, 다음번에 그를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돕겠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반대로 어렵게 용기를 내어 부탁한 일이 거절로 돌아왔을 때 상심하거나 서운한 마음도 생길 테고요.

요즘은 될 수 있으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사회인 만큼,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거나 혹은 나에게 부담이 지어지는 상황 자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부탁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부탁을 하는 일도, 또 부탁을 받는 일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부탁하다가는 거절당하기 십상입니다. 이왕 부탁하는 거, 조금 더 성공률을 높이고 서로가 쿨하게 의중을 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오늘은 성공률을 높이는 부탁의 기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첫째, 적절한 타이밍에 부탁하기

우리는 종종 부탁하는 사람은 나지만, 그 부탁을 승낙할지 결정하는 것은 상대방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간과합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 흔쾌히 타인을 돕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쉽게 이해가 갑니다. 기분이 좋으면 곁에 있는 사람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더욱 관대해지면서 누군가 부탁해 올 때 수용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의외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부정적 상태 감소 가설’이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연인과의 이별로 슬픔에 잠기거나 퇴근 전 상사의 질책으로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처럼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누군가의 부탁을 외면하기가 힘들어지는 심리인 것이죠.

누군가 부탁해 오는 상황은 그에게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있다는 신호이고, 상대방의 처지에 감정이입이 돼서 돕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 부탁을 할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잘 살펴서 적절한 타이밍에 하는 것이 성공률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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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부탁하기 전후에 감사 인사하기

부탁은 말 그대로 부탁입니다. 상대가 원치 않거나 들어 줄 수 없는 부탁이라면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가끔 어떤 분들은 그것이 마치 자신의 권리인 양 무례하게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로 부탁하는 사람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 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죠.

부탁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탁하는 사람에게 감사 표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남편에게 이번 여름휴가를 위해 항공편과 숙박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할 때, “작년 여름에 당신이 예약한 숙소 정말 좋았는데… 늦었지만 고마웠어요. 이번 휴가 때도 부탁 좀 해도 될까?”라고 부탁하기 전에 이전에 느꼈던 고마운 마음을 먼저 표현해 주는 것이죠.

 

셋째, 상대방의 유능감 추켜세우기 - “너밖에 들어 줄 수 없는 부탁이야.” 

사람에게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도 존재하고요. 따라서 상대방에게 부탁할 때 이 인정 욕구와 유능감을 충족시켜 준다면, 부탁을 수락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사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부탁 내용 조율하기 

부탁을 들어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부탁받은 사람의 마음이지만, 그 사람이 처한 여러 상황이나 복잡한 이유로 인해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부탁을 들어 주고 싶지만, 상대가 바라는 정도나 기한에는 미치지 못할 경우 아쉽지만 거절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죠. 

따라서 상대가 부탁을 들어 줄 의사는 있으나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가 수용 가능한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질문함으로써 처음 한 부탁의 내용이 조정 가능함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탁하는 입장이나 부탁받는 입장 모두 윈윈(win-win)하게 되는 것이죠.

 

다섯째, 한 번 더 용기 내기 – 두 번째 부탁의 성공률 

용기를 내어 어렵게 한 부탁이 거절당했을 때 한 번 더 부탁해 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흔히 사람들은 일전에 부탁을 거절한 사람은 다른 부탁에도 똑같이 응하지 않을 거라고 예측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요, 연구진들은 이러한 짐작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뉴어크와 그의 동료들(Newark et al.)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첫 번째 부탁을 했을 때 허락할 것 같은 사람의 수를 예측하게 한 다음, 곧이어 두 번째 부탁도 들어 줄 것이라고 짐작되는 사람의 수도 추측하게 했습니다. 실험 결과, 첫 번째 부탁을 들어 줄 거라고 예측한 사람의 수는 거의 일치했지만, 첫 번째 부탁을 거절한 다음 두 번째 부탁까지 거절한 사람은 예측보다 훨씬 적었습니다(Newark, et al., 2014).

즉,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번 부탁을 거절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다음 부탁까지 거절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상대의 부탁을 번번이 거절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한 번 거절당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고 한 번 더 용기를 내 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여러분 중에는 유독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거절에 취약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며, 또 가능하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분들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을 기억하셔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부탁하는 용기를 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았던 호의와 도움을 잊지 않고, 누군가가 무언가를 부탁해 올 때 크게 무리가 안 된다면, 기꺼이 부탁을 들어 주는 멋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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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Newark, D. A., Flynn, F. J., & Bohns, V. K. (2014). Once bitten, twice shy: The effect of a past refusal on expectations of future compliance.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5.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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