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조언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가정주부에서 일 년차 레지던트로 변신해 다시 꿈을 찾아 나가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재미있고도 가슴 짠하게 그려 낸 화제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JTBC에서 방영된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인데요, 주인공 ‘차정숙(엄정화)’은 의대를 졸업했지만, 너무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뒤늦게 다시 의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차정숙이 힘들게 들어간 의대 공부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오랜 기간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머물다가 다시 의사가 되는 길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 줍니다. 레지던트 기회를 잡는 일부터 자식뻘 되는 선배 레지던트에게 핀잔을 듣거나 중병에 걸리는 등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커리어를 이어 가는 일은 전문직 여성에게도 무척이나 힘들 일입니다. 그러나 차정숙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마침내 되찾고 맙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처럼 대부분의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곤 합니다.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삶의 방식에서 돌보고 책임져야 할 자녀가 생겼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가족에게 할애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해서도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어린 자녀의 육아에 있어서 엄마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현실이기에,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기점으로 워킹맘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전업주부로 살아갈지 크게 고심하며 내리기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양쪽 갈림길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자녀를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다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경력 단절 여성’(일명 '경단녀') 들이 존재합니다.
아직 한창 자녀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반면에 주변에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거나, 육아에 도움을 받을 만한 가족이 전무한 경우에 여성들은 잠시 일터를 떠나 있다가 재취업을 기약합니다. 그러나 막상 재취업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경력 단절’이라는 낙인과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재취업의 기회는 요원하고, 취업이 된다 해도 과거 경력과는 무관한 단순 서비스직이거나, 제대로 된 경력직의 대우를 받기 힘든 것이 실상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선뜻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겠지만 세상만 탓하면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에, 다시 한번 힘과 용기를 내야 합니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가 도움이 될까요?
① 잃어버린 나를 찾기로 선언하기: 이제는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좋아했던 일이나 꿈, 커리어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온종일 가족들을 위한 돌봄과 희생으로 채워진 삶을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잃어버렸던 나와 꿈을 다시 찾기로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② 잘나가는 이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기: 나와 달리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 온 친구의 승진 이야기나 이전 직장 동료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스스로가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동안 일을 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고,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구어 온 시간임을 잊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내 인생의 방향과 나만의 페이스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③ 경력 단절의 시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기: 육아를 비롯한 나름의 사정에 의해 경력이 단절됐던 시간을 돌아볼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 시간을 무의미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이 기간 동안 직업적 커리어는 멈췄을지 몰라도, 돌아보면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내 삶에서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나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시기였을 수 있는 만큼, 행여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고 평가 절하했다면 ‘유의미한 시간’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시기 바랍니다.
④ 무너진 자존감 일으켜 세우기: 오랫동안 사회적인 교류가 단절되거나 육아에만 전념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잘했었는지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채 길을 잃기도 합니다.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잘하는 게 있기는 했나?’, ‘내 주제에 무슨….’처럼 혹시라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이제부터는 나 자신에게 긍정의 말, 힘이 되는 말을 건네주세요.
⑤ 과거의 영광이 아닌, 지금의 현실에서 다시 시작하기: 막상 재취업을 준비하거나 알아볼 때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본인이 사회에서 잘나가던 시절에 받던 좋은 처우나 자신에게 주어졌던 많은 기회들과 지금의 현실을 자꾸만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시간은 흘러서 나와 직업 환경, 주변 상황 등등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 경력과 지식수준, 보유한 기술, 가용 자원한 자원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이 일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어떤 조건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⑥ 인생의 커리어 설계도 작성하기: 과거 종사했던 직업 분야로 재취업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진로를 개척해 신입의 위치에서 시작할지, 유망한 직종이나 취업이 잘되는 분야는 무엇인지, 그 직업이 나의 적성에 잘 맞는지, 나에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필요한 공부나 기술, 갖추어야 할 자격증은 무엇인지 등등 커리어 설계도를 그려 보고, 어느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선택해서 집중해 나가도록 합니다. 이 커리어 설계도를 작성할 때는 단기, 중기, 장기 등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과 함께 이에 맞는 전략 수립 및 수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⑦ 사회적 네트워크 재정립하기: 오랜 시간 동안 경력이 단절된 채로 지내다 보면 아무래도 직업 현장의 변화된 분위기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고, 무뎌지기 쉽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이 어색하겠지만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전 직장 동료나 선후배에게 가볍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나 취업에 대한 팁을 얻게 될 수도 있고, 직접적인 도움은 없더라도 구직에 대한 동기부여나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오랜 시간 경력이 단절됐던 분들이 재취업을 준비하고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또다시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스스로를 믿으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도전한다면, 분명 여러분의 능력과 진가를 알아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시대의 모든 ‘차정숙’을 응원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