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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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신 말일 텐데요, 남성들은 이 세 가지 경우처럼 큰일이 아니고서야 결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전통적, 사회적으로 남성들은 강인해야 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죠. 

이 말에 여러분은 얼마나 동의하시나요?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울고 싶을 때도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기 어려웠던 남성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힘든 내색을 하는 것이 혹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혹은 사회생활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까 봐 염려되어 마음속 이야기들을 꼭꼭 숨겨놓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뉴욕타임스지 기사에 따르면, 2021년 미국 성인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남성 응답자의 50% 이하만이 친구 관계에서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며, 15%는 가까운 친구가 전혀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수치는 1990년대의 응답값보다 5배 증가한 것이며,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정서적 지지나 개인적인 감정들을 더 잘 나누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남성들이 우정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감정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성들은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보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자신의 상황을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정신장애 유병률 양상에서 나타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알코올, 니코틴을 비롯한 약물, 물질 사용 문제, 공격성, 폭력성과 같은 외현화 장애의 유병률이 높은 반면, 여성들은 우울증, 기분부전장애와 같은 기분장애 또는 불안장애처럼 내현화 장애의 유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외현화 장애는 문제행동의 양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고, 내현화 장애는 증상이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말합니다. 

2021년 국립정신건강센터 주관으로 만 18세 이상 만 79세 이하 5,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정신장애 1년 유병률은 남성 8.9%, 여성 8.0%, 전체 8.5%로 남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 내현화 장애에 해당하는 우울장애 1년 유병률은 남성 1.1%, 여성 2,4%, 불안장애는 남성 1.6%, 여성 4.7%로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반면 외현화 장애에 해당하는 알코올 의존과 남용은 남성 3.4%, 여성 1.8%, 니코틴 의존 및 금단증상은 남성 4.9%, 여성 0.5%로 남성이 훨씬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성들이 성공, 강인한 남성상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경험한다면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주부나 어머니로서의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기대, 육아와 경제활동 병행의 어려움, 유리천장을 비롯한 사회적 차별 등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을 경험할 때 그것이 우울감, 불안감 등의 내현화 장애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이 감정을 표현하거나 힘든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쉽게 용인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남성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혹은 우울, 불안 등을 느낄 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기보다 술이나 담배 등을 통해 풀 때가 많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폭력적,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해소하기도 합니다. 맨정신에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술기운에 의지해 털어놓기도 하고, 다 잊고자 하거나 흡연을 통해 잠시 스트레스를 날리고 이완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일시적으로는 스트레스와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문제해결은 될 수 없습니다. 또, 빈도가 잦아지고 지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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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 지지를 얻으면서도, 건강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1. 운동, 동호회 등 건강한 취미활동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운동이나 동호회 활동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새로운 활동을 통해 기분 전환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 혹은 이미 알고 지내던 친구들, 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 욕구가 충족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혼자 하는 운동이나 활동보다는 축구나 골프, 단체 조깅처럼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2.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 만들기 

가까운 친구나 동료 중 마음이 잘 맞고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세요. 성공이나 경쟁, 질투심과 같은 마음에서 벗어나 우정을 나누며 서로 존중하고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삶의 질이 훨씬 향상될 것입니다. 종교 단체의 모임, 대화 모임 등을 통해 남자들 간의 우정을 쌓고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3.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사회에서 정해 놓은 남성상이나 역할기대를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도 좋습니다. 섬세한 남성, 감수성이 풍부한 남성, 다정 다감한 남성, 가사를 좋아하는 남성, 수다 떠는 것을 즐기는 남성 등 남성상 안에도 수많은 모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강인하고 모든 것을 혼자 이겨내는 모습만이 바람직하고 좋은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의 진짜 성향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세요.

 

“남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여자는 저래야 한다.”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을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감추고,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남성성, 여성성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정서적 욕구가 있습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나 이런 욕구를 표현하며 충족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가 먼저 그런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 뉴욕타임스 기사: Why Is It So Hard for Men to Make Close Friends?

https://www.nytimes.com/2022/11/28/well/family/male-friendship-loneliness.html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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