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월, 세계에서 차가 없는 가장 큰 도시를 만들기 위한 발의가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다. 독일 베를린 시민단체 Berlin Autofrei에서는 88 평방 킬로미터의 지역에 차가 다닐 수 없도록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88 평방 킬로미터는 한국의 경기도 하남시(91 평방 킬로미터)보다 약간 적은 면적으로, 서울의 2호선 지하철처럼 S-Bann링 이라는 열차 노선이 선회하는 지역이다.
바다를 가든 산을 가든 차는 어디서건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남시만큼의 면적에 차가 없다니. 그게 어떠한 광경일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이 되며, 원래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이 사라져 드넓어 보이지 않을까? 평화로울 것 같기도 하고, 차가 없으니 불편할 것 같기도 하다.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는 마트도 차를 타고 가는 마당에, 베를린에서는 왜 이러한 청원서가 등장했을까?

지난 8월은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역사상 가장 더운 5년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해수면이 3배 상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방송이나 캠페인에서 지구를 지키자, 환경 보호하자 따위의 메시지는 익히 보아왔지만 피부로 와 닿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은 위기감이 들 만큼 더웠다. 실제로 지구 온도가 상승하여 야생 동물 개체 수와 서식지가 크게 변화하였고, 이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보고서로 그동안의 기후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산 활동으로 인한 자연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확실해졌다.

지구와 인간은 닮았다. 실제적인 증상이나 문제가 발현되기 전까지 그 심각성을 모른다는 점, 문제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어느 정도 악화된 시점이라는 것이 그렇다. 지구가 곳곳에 여러 문제점을 떠안고 있으며, 그 문제가 여러 나라에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과 신체 또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그중에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지구와 인간의 온난화다. ‘온난화(溫暖化)’는 쉽게 말해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태양이라는 외부 자극으로 인해 지구는 열을 받는다. 하지만 태양이 온난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열을 받으면 다시 그 열을 배출하면 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지구가 받은 태양열이 지나치게 많은 이산화탄소로 인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대기 중에 묶이게 되어 생긴다. 즉, 원래 잘 이루어지던 순환이 지구에 고여서 온도 변화가 발생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인간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각종 외부 자극을 받는다. 누군가의 잔소리, 폭력적인 언행, 마음의 상처가 되는 상황 등등.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살아가면서 발생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외부 자극을 견디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제 안에서 배출해낸다. 하지만 누군가는 외부 자극으로 인한 슬픔, 분노, 우울, 무력감 등의 감정 및 상태를 자기 안에서 품는다. 해소하고 풀어냈다고 알고 있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정을 삭이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구 온난화처럼 열과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인간 온난화를 겪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어디서 가장 먼저 드러날까? 사회 문제, 경제 문제 등이 그러하듯 취약 계층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말 그대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인간 온난화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문제될 수 있는 요소가 쌓이고 또 쌓이다가 가장 먼저 아픈 곳은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이렇듯 지구온난화는 우리의 마음이 작용하는 형태와 매우 비슷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면 잘 생각해보자. 그 부위는 평소에도 가장 약하다고 느꼈던 부분일 것이다. 회복되었나 싶으면 아프고, 아픈 주기가 빨라지다 못해 다른 부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식으로.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이산화탄소인 것처럼, 우리가 아픈 이유 혹은 스트레스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다. 같은 스트레스더라도 사람마다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어릴 때부터 항상 이기고 싶었던 형을 생각하며 죽어라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구는 돈을 벌어야만 사람 노릇을 하는 거라는 집안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쉬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지구는 보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복구와 회복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심각성을 인지한 많은 나라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 Blackrock은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선언하고, AXA는 석탄 사업을 금지했다. 많은 경제학자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투자회사들의 행보가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 예상하고 있다. 다양한 노력이 보기 좋지만 상태가 심화되기 전에 알아채고, 회복에 힘썼더라면 심각한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미국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는 1990년부터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에 비해 많은 사람이 지구온난화를 믿거나 걱정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 때문에 지구온난화는 음모론이라는 비난을 받고, 잠깐의 기후변화일 뿐이니 곧 회복될 거라며 외면받았다. 하지만 앨 고어는 근거 자료를 계속 수집하면서 전 세계에 강연을 다녔다.


지구온난화는 심각한 지경이 되도록 막지 못했지만, 인간 온난화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앨 고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 온난화에 대해 어릴적 작은 일이니 호들갑 떨지마라, 우울함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금방 지나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스트레스 정도와 어떠한 상황을 겪었을 때 느꼈던 감정,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도 좋다. 친구나 가족과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나의 상황을 파악해 보는 것도 좋겠다.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어떠한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지, 어떠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관심을 기울이며 원인을 찾아야 한다.

원인을 찾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 투자회사들이 지구온난화 극복을 위해 탄소 배출을 막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원인이 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전혀 다른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베를린의 S-Bann링 지역에 탄소를 배출하는 차를 없애버리고 녹지대를 만드는 것처럼, 원인을 만드는 재료 자체를 거두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체조를 한다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행동이 들어가면 더욱더 좋다.

지구는 인간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지구는 자생할 줄 아는 행성이다. 인간은 스스로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 당장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며 산책을 나가보자. 나의 마음속에 진 응어리 또한 시원하게 식을지도 모른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