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19)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서호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새 당신은 무엇을 가장 걱정하는가? 육아, 부부관계, 학업, 직장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걱정거리는 무수하다. ‘불안’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본능으로써 작동하듯, 걱정 또한 마찬가지다. 적당한 걱정은 우리가 어떠한 사건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불안해할 상황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불안하고 걱정한다면?

 

범불안 장애, 머릿속을 지배하는 불안과 걱정

범불안 장애란 불안장애의 한 종류로, 일상생활에 과도한 걱정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걱정도 너무 많으면 병이다’라는 속담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과도한 걱정, 통제하기 힘든 비합리적 걱정을 주로 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불안은 순기능을 갖고 있다. 개인이 어떤 위협에 대응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줄일 수 있도록 준비시켜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불안하고 긴장되는 마음이 들어 시험 준비를 한다. 시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없다면 시험 준비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즉, 불안과 걱정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경고 신호라는 순기능을 지닌 정상적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불안과 걱정이 드는 것은 정상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도의 걱정을 정신과 질환, 병의 차원으로 말할 수 있을까?

 

너무 사소한 일들이나 별로 불안해할 상황이 아닌데도 불안하고 걱정하는 것, 걱정할 일이긴 하지만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 범불안 장애의 과도한 걱정에 대해서는 크게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한 환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47세 여성 A는 내과로부터 의뢰되어 정신과 외래에 방문했다. 평소 메슥거림, 두통, 온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여 자주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방문했지만 특별한 소견 없이 신경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A는 35세 때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부터 불면증과 함께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증상이 생겼다. 이러한 증상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더 심화되었다. 불면증, 긴장감, 불안, 초조함, 피로감이 심해지는 한편 A의 딸이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A는 딸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보였다. 딸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위해를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으며, 하루에도 서너 번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머릿속에 걱정거리가 떠올라 불면 증상 또한 심해졌다. 정신적, 신체적 증상이 극에 달했을 때 내과 의사로 권유를 받아 정신과에 방문하였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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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불안 장애의 신체 증상

범불안 장애는 과도한 불안과 걱정 이상의 발병 특징을 보인다. 이유 없이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며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불안이 지속하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다양한 신체적 증상이 동반된다. 우리가 긴장할 때를 떠올려보면 근육 긴장이 되는 감각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긴장함으로써 신체는 금방 피로해지고, 그로 인해 불면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과도한 긴장과 불안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불러온다. 범불안 장애의 흔한 특징 중 하나다. 또한 근육 긴장이 흔하게 나타나다 보니, 그로 인해 여러 신체적인 불편감이 증상으로 발생한다. 요통이라든가 어깨 결림 등으로 인해 재활학과를 찾아 물리치료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가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간다. 범불안 장애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증상 때문에, 이를 겪는 환자들은 정신과가 아닌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찾는다. 신체 증상을 낫게 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치료가 아니므로,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 범불안 장애에서 왜 중요할까?

이처럼 범불안 장애는 우울증과 더불어 1차 진료 기관 환자의 5% 이상이 될 정도로 가장 흔한 정신과임에도 불구하고,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환자의 1/3만이 발병 후 1년 이내에 치료받고, 그 외 많은 환자가 10년 이상 경과 후에 정신과를 찾게 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범불안 장애는 신체 불편감을 흔하게 동반한다. 따라서 내과 등의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가 높다. 또한 서서히 발병한다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치료 없이 적응하며 생활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차적인 동반 질환이 발병할 때까지 범불안 장애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도 한몫한다. 이에 대한 이유로 1차 진료 기관 의사들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인식 부족이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범불안 장애는 다른 질환에 비해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더욱더 중요하다. 초기에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고 오래 지속할 경우, 이차적인 합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알코올 사용 장애, 물질 남용 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범불안 장애의 특성상 환자들이 어느 정도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의 다른 입체적인 질환이 발병하기 전까지 정신과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여러 신체적인 불편감 탓에 정신과가 아닌 내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을 찾아 증상을 더욱 악화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혹은 불면증이 아주 심해진 경우에 정신과를 찾아 범불안 장애를 진단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범불안 장애는 다른 불안장애와 비교하여, 공존 질환을 크게 갖는 특징을 보인다. 어떠한 공존 질환이 발생하고, 어떻게 악영향을 미치는지 다음 회차를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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