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18)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서호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완경과 갱년기
여성은 월경, 임신 및 출산, 완경의 큰 시기를 겪는다. 이 세 시기에는 특히 불안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 관리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가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월경과 임신 및 출산은 처음 겪는 많은 사람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완경 또한 오랜 시간 주기적으로 겪었던 월경이 끝나고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겪는 시기로 관리가 필요하다. 완경과 갱년기를 노화 또는 질병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심리적 변화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어떻게 완경을 잘 맞이해야 할까?
갱년기 증상
완경은 하게 되면 생식기능이 저하되고 성호르몬의 분비가 급감한다. 이에 따라 신체와 심리 또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완경을 포함하여 그 일련의 변화 시기를 갱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완경은 꼭 노화에 따라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젊은 나이라고 하더라도, 난소 등 생식기관을 적출 받거나, 항암치료를 장기간 받았을 시에 발생할 수 있다. 스트레스, 불안 등 심리적 현상은 월경 때와 비슷하지만, 갱년기는 월경 주기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시기가 길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갱년기의 증상은 어떻게 나타날까?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은 얼굴이 화끈거리며, 자는 도중 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도 흔하게 나타난다. 불면증과 두통, 어때 통증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급작스럽게 소화가 잘 안 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입맛과 체중이 줄며 성욕도 떨어질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기운이 없어지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근육량과 체력이 떨어짐에 따라 추위를 느끼기도 한다.
인지적인 증상으로는 만사가 귀찮고, 무엇에든 의욕이 없는 증상이 나타난다. 사는 재미를 잃기 때문에 그로 인한 무기력증, 스트레스, 우울증, 감정 기복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이로 인해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더욱더 홀로 고립되기 쉽다. 모든 것이 다 본인 잘못인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며, 주의 집중력이 떨어져 건망증이 생기기도 한다. 갱년기는 완경과 더불어 신체적인 변화가 눈에 띄게 발생하여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저 멀리 있다고 여겨졌던 노화, 죽음과 같은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정서적인 불안정이 발생하는 것이다.
‘빈 둥지 증후군’과 여성의 자리
갱년기 여성에게는 ‘빈 둥지 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보금자리라 여겼던 가정에서 성장한 자식들이 떠나가며, 집이 ‘빈 둥지’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으로 발생한다. 우울증의 일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빈 둥지 증후군’은 전업주부와 같이, 가정에 자신의 존재와 의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을 때 더욱 크게 발생한다. 퇴직 후 우울증을 겪는 직장인의 경우처럼, 자신에게 이제 할 일이 없다는 데서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것이다. ‘빈 둥지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울증의 기본 심리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상실감’ 즉, ‘Loss'다. 애정과 관심 등을 쏟았던 대상이 사라질 경우, 그 에너지가 갈 곳을 잃는 것이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 기능의 균형을 깨트려 여러 증상을 야기한다.
우울증은 공황장애나 기타 불안장애와의 병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갱년기의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 더해 상실에 의한 스트레스로 노르에피네프린 분비의 조절이 어려워지면, 교감신경계 조절의 이상으로 인해 불안감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세로토닌은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조절하며, 노르에피네프린은 불안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계의 주된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실감은 우울과 더불어 자존감의 저하와 양육자로서의 정체감에 손상을 일으켜, 정체감이 흔들리는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자아 정체감이 크게 형성되었다면 아이가 없을 때의 자신을 규정하기 어렵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는 불안감은 우울뿐만 아니라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안일의 무게가 한 사람에게 실리지 않아야 한다. 또한 가정을 돌보는 데 온 시간을 희생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 의식은 필수다. 가정을 도맡는 역할의 과반수가 여성일 것이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정 내에서도 자기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자신을 잃지 않고 가치와 의미를 인식해야 우울감과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우울을 겪게 되더라도 자신이 존재할 자리를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갱년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빈 둥지 증후군’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빈 둥지 증후군’을 해소하려는 미봉책으로 늦둥이를 가지려 하기도 하고, 심리적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정신적 위기는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하지 못한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빈 둥지 증후군’을 포함한 갱년기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점이다. ‘빈 둥지 증후군’의 대처 방안을 살펴본다면, 갱년기 문제 또한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빈 둥지 증후군’은 대상에 대한 애정 및 관심 등의 에너지가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집안 살림, 자녀 교육 등에 쏟았던 에너지를 이제는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수 있는 일로 옮겨야 한다. 이때 가족과 배우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함께 취미를 갖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도 본인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어떠한 대상에 애정과 관심을 주든, 그 대상은 살아있는 한 유한하다. 결국, 자신의 둥지를 가꾸고 보수하고 그 둥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물론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재취업을 하거나 사회 속에 적절하게 속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일한다고 하면, 다시 업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다시 나만의 인생 시작이다, 나는 해방되었다.’와 같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빈 둥지 증후군’, 그리고 갱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닥칠 상실감을 대비하여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소중하며, 다양한 영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