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14)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서호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과를 찾는 사람 중에는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 특히 불안에서 파생되는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불안을 더욱 잘 느끼는 걸까? 여성과 남성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여성과 불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많게는 5배, 대게 2배 이상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안장애 중에서도 특히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고소공포증 등 특정 공포증이 그러하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근본적인 생물학적인 요인부터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의 가장 큰 차이점인 월경, 임신, 출산 등 여성의 생리적 변화와 관계를 가진다. 여성의 정신건강 문제에 있어서 크게 세 가지 위험시기가 존재한다. 월경, 임신 및 출산, 완경(폐경기, 갱년기)이 그러하다. 세 가지 시기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지만 주 나이대의 변화를 짚어주며 동시에 호르몬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어떠한 변화가 불안으로 연결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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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과 호르몬의 영향

월경을 하기 전, 혹은 하는 도중에 늘어난 식욕을 느끼거나, 평소보다 부쩍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월경 시기에는 매달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면서 생리현상이 일어나며, 노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의 여성호르몬은 감정 기분을 전달하는 세로토닌 신경전달물질 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성호르몬의 잦은 변화가 뇌에 있는 세로토닌 체계 분리를 초래하며 자극을 주어, 정서불안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월경을 시작하기 전에는 여아, 남아 정신질환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월경이 시작되는 사춘기 이후, 여성의 우울, 불안장애가 급격히 높아진다. 정확히 월경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요인으로서 충분히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위에 말했듯,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 같은 여성 호르몬은 인간의 기분,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세로토닌 체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호르몬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면, 그에 따라 세로토닌 체계 또한 급격히 변화시키고 영향을 주게 된다. 세로토닌 체계의 불균형 초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사춘기 무렵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시기가 나타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급격한 상승은 조현병의 발병률을 높인다. 이처럼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각각 남성과 여성의 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에 있어서 뇌의 구조나 기능의 차이가 있다는 가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 또한 여성의 불안이 높은 것을 생물학적인 차이로만 말할 수도 없다. 심리․사회적인 영향이 여성의 정서 발현에 주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작용과 스트레스

월경 때나 임신 중, 출산 뒤에도 여성은 호르몬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구체적인 호르몬은 어떻게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불안을 이야기할 때, ‘세로토닌(뇌의 시상하부 중추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하는 화학물질 중 하나)’을 많다, 적다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많아지면 많은 대로, 적어지면 적은 대로 그 체계 및 시스템이 잘 작동되어야 뇌가 건강해진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서 오작동을 일으킬 때 정서 작용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도 마찬가지다. 때에 따라 에스트로겐이 높아서, 혹은 적어서 그렇다는 논의(Debate)가 있다.

물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완경기 때는 에스트로겐이 명백히 떨어진다. 따라서 ‘난포자극 호르몬(Follicle Stimulating Hormone)’이 올라가고 떨어지는 상황에 에스트로겐 보충 치료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조현병은 호르몬 자체보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이유가 있다. 이처럼 여성의 불안도 마찬가지다. 에스트로겐의 변화는 높거나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있다. 날씨가 급격하게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조금씩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적응하며 소화시키고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스트레스는 마주하는 데 큰 힘이 든다.

불안에 있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취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성은 생식 주기에 따른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호르몬 변화를 급격하게 겪는 월경, 임신과 출산, 완경 이 세 시기는 정신 건강에 더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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