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숲에서 살아남기(6)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 간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종종 환자분들은 거부감을 보입니다. 대개 곤란해하시거나 화내시거나 둘 중 하나이지요.
“가족이 남도 아니고, 어떻게 다른 대인관계에서 하듯이 거리를 두나요?”
라고 말씀하시는, 가족도 서로 다른 인간 군상의 집합이며 그 안에서 의견 차이와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아예 떠올리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저희 식구들은 그런 거 절대 인정 안 해주세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저희 남편에게 전화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저 정말 힘들다고...”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특히 이 중에서 두 번째 유형의 분들은 가족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혹은 당한다고 느끼시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감정적 상처는 계속 쌓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단 한 번도 표현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에요. 가족들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성인이라는 점을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가족이 강요하는 감정 이외의 감정을 가지는 것을 결코 인정받지 못했던 분들이지요.
지난번에 저는 가족 간에도 필요한 감정의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어느 정도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고, 거리를 둠으로써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그렇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도 말씀드렸어요.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가 누군가와 거리를 둘 때 그 주체는 나일까요? 상대방일까요? 거리를 벌리는 주체는 반드시 ‘나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은 심하게 낮은 편이에요. 역기능적 가족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지요. 만일 여러분의 가족이 가족 구성원들끼리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지나치게 밀착된 유형의 역기능적 가족’이라면, 나머지 가족들이 여러분의 정신적 고통을 헤아려서 변화해주고 여러분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거리를 두는 것은 여러분이 현 상황에서 무언가 행동하는 것을 의미해요. 한탄하고, 기다리지만 말고 불편한 분위기를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것이지요. 가족 간의 거리가 반드시 물리적 거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리적 거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리입니다. 상대방과의 마음의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권리와 존엄을 침범할 때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을 의미해요. 쉽게 이야기하면 무리하거나 무례한 요구를 결코 들어주지 않는 거죠.
역기능적 가족에서는 주로 한 명의 가족이 희생양 역할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진료실에서 찾아오신 사례를 보면 치매 부모님을 돌보는 문제가 단 한 명의 자식에게 집중되면서도 다른 가족들이 이에 대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더 잘 돌보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고, 모든 명절 준비와 집안의 대소사를 단 한 명의 며느리가 챙기며 나머지 며느리는 손님처럼 와서 잠깐 있다가 가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모든 가족 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가족의 규칙은(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가족 사이에 질서를 유지해주고 가족 간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규칙은 결코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희생되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가정의 힘든 일이나 다른 가족들이 맡기 싫어하는 도맡아 하게 되고, 이에 대하여 부당함을 이야기하면 속 좁은 사람이나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되어버리지요. 결과적으로 희생자 입장에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것에 대한 어떠한 감사도 듣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 되고, 자존감마저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희생양 역할을 해왔던 분들이 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감정적 거리두기입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나머지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나머지 나의 존엄마저 흔들릴 때, 내가 참지 않으면 가족 간에 분란이 생길까 봐 참는 게 습관이 된 나머지 나 자신이 정말 마음을 가진 존재인지조차 의심될 때, 우리는 가족과 마음의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정말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가족들의 분위기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이번 한 번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반쯤 위협과도 같은 유혹을 이겨내고, 표현해야만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방법대로 차분하게, 하지만 너무 감정적이지는 않게요. 부당함을 얘기할 때 감정에 차서 이야기하면 그대로일 뿐이에요. 누구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왜 부당한지, 나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꼭 이러한 방식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말해봅니다.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진짜 과정은 지금부터에요. 여러분의 말을 들은 직후 나머지 가족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억울한 감정은 이번에만 잠시 접어두시고요. 한 점과 한 점의 거리를 바라보려면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높은 산에서 아래를 바라보듯이 다른 가족들의 반응을 한 번 제삼자처럼 관찰해보는 거예요. 나머지 가족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로, 어떤 가족은 여러분의 감정표현을 반영해주면서 의견을 조율해주고, 뭔가 변화를 주는 대신, 늘 하던 대로 속이 좁고 옹졸하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도 있어요. 마지못해 사연자분의 의견을 들어주면서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거죠. 이런 경우에는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당연한 것처럼 강요당해온 희생양들은 죄책감을 느끼실 수가 있어요.
“말하고 보니 죄책감이 드네... 괜히 내가 불만을 말해서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 아냐?”
라는 식으로요.
이 상황에서의 거리두기는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자신의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덮어 씌우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해요. 그동안 여러분의 감정은 소중하게 다루어지지 못했죠. 우리는 가족들을 사랑하기에 가족들이 원하는 내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실망을 하거나 나에게 모진 말을 하면 가족들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두려워하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내가 돌봐야 할 내 감정과 행복마저도 포기해버렸었지요.
하지만 가족의 의견이 반드시 절대적 진실은 아니에요. 가족의 의견 또한 지극히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이 하는 의견 표현일 뿐이에요. 가족이라 하더라도 때때로는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이 있고,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른 모든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평가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에요. 어떤 의견과 입장의 차이는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설령 백 배는 더 행복하고 성숙한 가정에서도 입장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결코 좁혀지지 않는 의견과 감정의 차이는 각자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세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가족 안에서 너무나 힘들다면, 상대방이 뭐라고 말을 하건 간에 그것은 상대방이 발하는 하나의 신호로 생각하고 여러분의 마음과 존엄성을 지키세요. 여러분 스스로의 감정을 믿고 존중하세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일 의견과 받아들이지 않을 의견을 스스로 정하는 것, 이것도 하나의 거리두기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가족 분위기 안에서는 나머지 가족들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러분을 매도하며 입을 막아버리려고 할 수도 있어요. 슬프게도 이러한 역기능적 가족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나에게 일어난 일은 사회환경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남에게 일어난 일은 그 사람 개인의 탓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역기능적 가족 안에서는 이러한 면이 극대화되어 가족 전체의 분위기에 반하는 입장을 내면 인성을 의심받거나 매도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가족 전체가 의견을 조율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마땅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여러분들이 하는 감정 표현 자체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매도하거나 인성이 나쁜 것으로 몰아간다면 이제 마음의 거리두기를 넘어서 신체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에요. 당신이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잃어버릴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데, 나머지 가족들이 자신이 희생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문제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여러분의 입을 막으려 한다면, 그 가족은 가족의 역할을 잃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슬프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가족에 대한 기대를 줄이실 수밖에 없어요. 상대방의 변하지 않는 점을 파악함으로써 굳이 그것을 바꾸려고 하다가 지쳐 무력해지지 않고, 나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죠. 이 상황은 가족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나의 존엄성을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가급적이면 접촉을 줄이는 것이 좋아요. 이번에야말로 집에 2번 갈 것을 1번 가고, 내키지 않으면 그냥 그날은 굳이 가족모임에 가지 마시고요. 나를 감정적으로 지치게만 만드는 소모적인 말다툼도 그냥 줄이세요.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가족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절망하지 않고, 그냥 구름이 끼면 비가 오는 것처럼,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우석거리는 것처럼, ‘그냥 이들은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이들에 대해 고민하지 마세요. 그리고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쓰고, 불어오는 바람에 내 옷자락이 날리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거죠.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족들과 멀어졌다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들이 언젠가는 서운해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스스로 지키셨듯이, 소중한 가족의 진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느끼는 거리감과 공허감은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세요. 그리고 여기서 보존된 마음의 체력은 진정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하고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쏟는 거죠.
부디 마음이 힘들 때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행복은 바닥이 테이블에 붙어있는 주전자와 같아서 자신을 채워야만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부디 너무 참지 마세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헌신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당신은 그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습니다.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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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