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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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듯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미움이 함께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약한 미움이 함께 하는 것만 보더라도, 사랑과 미움, 애증은 늘 공존합니다.

 이 애증이 가장 복잡하게 얽매여 있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가족이 공유하는 기억에는 객관성이 희박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부모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있기에 눈앞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미성숙한 자녀는 경험과 인지능력의 한계로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자녀는 자녀 나름대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억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 부모와 과거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서로 정말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여럿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은 쉽게 갈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는 다름이 틀림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의 기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녀는 부모의 주장을 이기적이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제사가 사라지거나 간소화되어 명절에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든 요즘, 그래도 사람들이 명절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갈등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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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다름을 갈등으로 이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명절은 충분히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다름에 대해 인지하는 것입니다. 다름을 나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나와는 다르다고 인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을 나에 대한 공격이나 모욕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부터는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름은 그저 다름으로 인지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다음은 서로의 다름에 대한 올바른 궁금증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름을 공격으로만 받아들였다면, 서로의 다름에 대한 올바른 궁금증을 가질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올바른 궁금증이란, 타인이 그 사람의 경험 속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가정을 한다면, 다름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상대에 대한 평가절하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 나름의 경험이 있으며, 각자의 인지적인 한계 내에서 다름의 합리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배경을 두고, 그 사람의 경험 속에서 나름의 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상대방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나온 질문은, 찬 물에 담궈 놓은 양파처럼 매운 기운이 빠져, 이 질문 자체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남아있는 약간의 매움이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서로 감수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올바른 궁금증에서 출발한 질문을 내가 받게 된다면, 내가 한 행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한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게 된다면, 경우에 따라 변명으로 들리기도 하고, 그 변명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의 배경을 설명하고, 상대가 그 배경에서 선택을 한다면 어떤 결정을 할지 상상 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대답을 한다면, 이런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과거에 한 선택보다 더 나은 결정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결정을 현재 내릴 수 있는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면 됩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한 더 나은 선택을 생각해 낸 것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으면 충분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시작과 끝은, 결국 관계의 당사자들의 합의로 결정됩니다. 그러니 아픈 관계를 모호하게 끌고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명절부터 아픈 관계의 종점을 결정해 나아가고, 동시에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을 바라봄으로써 각자의 삶의 평온을 찾으시기를 빌겠습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재옥 원장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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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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