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교회는 성경. 불교는 불경. 배구는 김연경’

세계적인 배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가 본인의 SNS에 직접 작성한 글이다. 스스로 배구의 경전으로 칭하는 자신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연경의 자신감 섞인 유머에 사람들도 동의를 표하며 즐거워한다.

‘저처럼 되는 건 쉽지가 않죠. 제가 잘하긴 하니까요.’, ‘많이들 저와 함께 뛰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 저의 생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등등 이미 지난 인터뷰에서 한 말들도 화제가 되어 자신감의 대표 어록으로 묶여 SNS에 퍼진 바 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자신을 신격에 비유하는 자랑은 경솔함으로 비치거나 타인에게 빈축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추켜올리는 말에도 사람들은 김연경에게 겸손을 요구하거나,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김연경의 자신감을 더욱 높이 사며 ‘갓연경’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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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까? 김연경의 당당한 자신감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여자 배구는 이번 도쿄올림픽(2021)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다. 8강 경기에서는 터키와 쟁쟁한 경쟁을 벌이다가 올림픽 4강에 진출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9년 만이다. 드라마 같은 우승을 한 후 선수들의 인터뷰에는 역시나 김연경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았다.

처음 올림픽에 출전, 8강 경기에서 과감한 서브로 화제가 된 박은진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연경 언니가 자신 있게 서브를 때리라고 해서 때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배구팀은 김연경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보여준다.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함께 경기를 뛰는 사람들도 김연경의 진정한 리더십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보면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리더란, 선두에 서서 큰 목소리로 구성원을 이끄는 역할이라고 교육받아온 탓이다. 하지만 김연경의 리더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과 다른 특별한 지점이 있다.

‘리더십’은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포스트모던 리더십(Postmodern Leadership),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이렇게 3개로 구분해볼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정서, 행동규범 등을 변화시켜 조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혁시킨다. ‘포스트모던 리더십’은 조직 내 한 사람의 모범 선례, 혹은 구성원의 동의를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을 말한다.

김연경은 이 가운데 서번트 리더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번트 리더십’은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조직의 목표와 구성원의 욕구 채우기 위해 배려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신뢰관계가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어 강한 경쟁력을 갖게 한다.

또한, 리더 자신의 이익이나 욕구보다 구성원들의 이익과 욕구를 가장 우선시한다. 이는 곧 리더가 자신의 개인적인 희생도 감수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이 직장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구성원을 돕는 데는 ‘정의의식(justice perceptions)’이 더 큰 역할을 가져온다는 플로리다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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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훌륭한 서번트 리더십으로 보인다. 구성원과의 단단한 신뢰 관계, 조직력뿐 아니라, 조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1. 유럽리그에서 최소 20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던 김연경 선수는 지난해 국내 복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흥국생명과 연봉 3억에 합의했다. 소속팀이 연봉으로 지급할 수 있는 총 23억 가운데 자신의 몫을 3억으로 낮추어, 나머지 금액을 팀 선수 전체의 연봉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2. 여자 배구 후배들을 위해 10여 년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3. 여러 국가에서 온 귀화 제의를 거절하며,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의 국가대표로 뛰는 걸 생각해본 적 없다고 못을 박았다.

4. 2014년 아시아 금메달 회식 때 배구협회에서 김치찌개를 사주자, 2차에서는 개인 사비를 들여 팀 전체를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다.

5. 공격수이면서 수비 또한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포지션은 김연경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김연경이 스스로 자신을 신의 반열에 올린 것에 우리는 기꺼이 ‘갓연경’이라 칭하며 열광한다. 이는 그저 김연경의 우수한 실력과 자신감뿐만이 아니라, 구성원을 배려하는 서번트 리더십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리더 한 명의 역량에 기대어 나아가는 카리스마리더십은 구성원의 목소리를 낮추기 마련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고 존경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십은 어떠한 모습일까. 구성원들의 바라는 바를 귀 담아 듣고 함께 연대하도록 격려하며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서번트 리더십에 가깝지 않을까.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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