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리더에서 탈피하는 법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또는 동호회에서 엄격한 규칙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는 일을 종종 겪습니다. 이익 창출이나 양질의 교육, 취미 생활이라는 애초의 목표는 희미해지고 규칙에 순응하며, 그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강력한 규칙과 규범으로 조직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하드 파워(Hard Power)’라고 합니다.
하드 파워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조지프 나이(Joseph Samuel Nye)가 정립시킨 개념입니다. 그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개념을 통해 지도자의 역할을 설명했습니다. 현재는 정치 분야를 넘어 직장, 조직, 모임 등 리더십이 발휘되는 분야에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조지프 나이에 따르면 하드 파워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가 하도록 강요하는 힘’입니다. 상대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뜻합니다.
간단한 예로 ‘회칙이 엄격한 등산 동호회’가 있습니다. 회원들의 애초 목적은 취미 생활을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었을 테죠. 하지만 취미 생활을 즐기려면 모임을 유지해야 하고, 모임을 유지하려면 ‘정기모임 몇 회 이상 불참 시 탈퇴’와 같은 회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반대로 소프트 파워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상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동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별한 회칙은 없지만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동호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년 안에 ‘전국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를 달성하고 인증서와 기념메달을 받자.”는 식의 명확한 공통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지요.
조직 구성원과의 안정적인 소통과 지속적인 동기부여도 필요합니다. 열의가 넘치는 신입회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고, 초반의 열의가 떨어질 때쯤 재충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소프트 파워가 조직과 리더에 대한 구성원들의 정서적 충성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강압적인 요소보다 매력적인 요소를 부각하는 것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프트 파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조지프 나이는 다음의 3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① 비전(목표)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미래상을 제시해야 합니다. 단, 현실적이며 신중해야 하고,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1년간 국내 국립공원 투어’는 합리적인 목표지만, ‘미국 국립공원 투어’는 다소 비현실적입니다. 이는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를 하기 어렵습니다.
② 정서지능
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 및 정서를 점검하고, 그것들의 차이를 변별하며, 그렇게 확보한 정서 정보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신입회원의 열정을 수용하기보다 “나도 겪어 봤는데 다 한때야.” “그러다가 사고 난다.” 등의 공감 없는 말을 하며 등산 지도를 해주는 것은 소프트 파워의 발휘를 저해합니다.
③ 소통의 기술
언어뿐만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와 같은 비언어적인 소통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슬럼프를 겪는 회원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공감하는 대신 “원래 다 그래.”라며 술자리를 강요하거나, “정신력이 약하다.”고 타박하는 것은 일방적인 소통입니다.
조지프 나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따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소프트 파워의 개념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치열한 고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리더십이란 단순히 명령만 내려서 발휘되는 게 아니라, 명확한 비전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힘은 미국 뉴욕시 공공도서관의 사례로 또 한 번 확인됐습니다. 도서관은 당시 모든 도서의 연체료를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5개월 동안 5만 1000개의 책과 DVD가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반납할 수 없었던 사연과 미안한 마음을 담은 메모가 동봉된 채였습니다.
이는 하드 파워를 조정해 소프트 파워를 끌어낸 좋은 사례로 평가됩니다. 공공도서관의 원래 목적은 연체료를 걷는 게 아니라, 대중의 정보 이용과 독서활동, 문화활동의 편의성을 향상하는 데 있습니다. 즉, 소프트 파워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공공도서관의 목적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지프 나이는 궁극적으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스마트 파워(Smart Power)’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팔로워(follower)가 있어야 리더도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권력은 팔로워에게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니 혹시 승진한 뒤 부쩍 외롭다면, 고독한 리더가 아니라 존경받는 리더가 되고 싶다면, 진정한 권력은 구성원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읽는 것만으로 왠지 위로가 됐어요. 뭐라도 말씀드리고 싶어서 댓글로 남겨요. "
"게을렀던 과거보다는 앞으로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네요.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