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숲에서 살아남기(4)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남편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거침없이 툭툭 던지고요. 언제는 퇴근해서 빨래를 널어야 했는데 제가 저녁 준비 중이어서 남편이 빨래를 널면서 ‘내가 뭐 이 집 종이야?’를 시작으로 계속 투덜거리며 아이들 빨리 결혼해 나가버리면 시원하겠다고 합니다. 사회생활 시작한 두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어 ‘다녀왔다’는 말을 안할 때도 있는데 그것 가지고도 엄마가 아이들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잔소리를 어찌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뉴스를 보면서 욕을 할 때도 많고요. 그게 제일 싫습니다. 왜 욕을 할까요. 장남인 남편은 아주 효자랍니다. 주말마다 어머니 집에 가서 수리도 하고 장도 봐주고 종일 있다 옵니다. 착하고 소심한 면이 있는 사람인데 거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때면 정말 싫고 상처가 됩니다.

말을 생각하고 내뱉으면 좋겠는데 성격일까요?

제가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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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도 깊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상대방에게 너무 좋은 말을 계속 하거나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지나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어른스럽지 못하거나 남들이 봤을 때 창피한 것처럼 생각하지요. 하지만, 저에게 오는 환자분들 중 굉장히 많은 수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거친 말들로 받은 깊은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도 치유되지 않아 고통받는 분들이에요.

이 사례에 나온 남편분의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한 가지만 짚어보고 싶어요. 당연히 남편분의 언어습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충고와 욕은 구분하기 어려워요. 가족끼리 일어나는 거친 대화는 항상 비판과 욕 사이의 한 지점 그 어딘가에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충고에 가까울수록 그 사람의 행동을 언급하게 되고요, 우리가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욕에 가까울수록 그 사람의 본질을 언급하게 되어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낮은 단계의 욕이나 비난은 주로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비판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지 않아서 제가 그것을 비판하고자 할 때 가장 낮은 단계는

“방금 일을 그렇게 처리한 것은 잘못되었어.” 정도예요.

행위에 대한 비판이죠. 그리고 여기서 수위가 올라가면 점점 그 사람의 존재나 존재의 근원에 대한 비판을 하게 돼요.

“넌 항상 일을 그런 식으로 하는구나?”

어때요. 좀 더 강도가 심해졌죠?

“넌 정말 매사에 성의가 없구나.”

좀 더 심해졌을 거예요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보니 너희 부모님이 너를 잘못 가르친 게 분명해.”

이것은 가장 심한 욕이에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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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동보다 태어난 이상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존재,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근원이나 본질에 대하여 비난받을수록 더 상처 받아요. 우리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출신 지역에 대한 비하, 인종에 대한 비하, 부모님에 대한 모욕을 굉장히 잔인하고 나쁜 욕으로 생각하는 거죠.

지금 남편분의 언어습관은 부인에게 있어서 상처가 되는 말을 골라가면서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빨래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당신은 나를 종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라고 들릴 수 있는 말을 하셨죠. 자녀가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 자녀를 가르친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함으로써 자녀와 어머니에게 둘 다 상처를 줬죠.

사례에서는 남편이 효자라고 쓰셨는데, 분명히 이것은 효자라서 자랑스럽다는 의미는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이렇게 자신보다 위계적으로 아래에 있는 사람의 존재나 존재의 근원을 심하게 상처 입히면서도 자신의 어머니, 즉 자신의 근원은 소중히 여기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슬플 거예요. 남편이 효자인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마음을 쏟는 것은 부인분에게 있어서는 상처가 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죠.

 

폭언과 폭력이 시작된 이유는 지금의 저로서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폭언과 폭력이 지금까지 지속된 이유는 알 수 있어요. 그건 말이죠. 그냥 놔두었기 때문이에요.

친밀한 관계, 가족 간의 관계에서 슬프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폭언을 하는 사람이 폭언을 처음 했을 때. 그리고 그 폭언이 쟁점이 된 방향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튀었을 때 처음부터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그 폭언은 반복되고 점점 그 강도가 세지는 양상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이 폭력에 익숙해지면 폭력에 신음하는 사람의 시그널이 폭력을 행하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지 않게 돼요. 결국에는 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폭력을 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죠.

물론 남편분이 그렇게 거칠게 말하게 된 데는 나름의 힘든 이유가 있을 거예요.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셨을 수도 있고, 밖에서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고, 이런 상황에 점차 누적되어서 견디기 힘들었을 수도 있어요. 지속적으로 누군가에 대하여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무언가 견디기 힘든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이죠. 하지만 그분이 힘들다고 해서 남편분이 어떠한 행동을 해도 부인분이 견뎌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폭언이나 이유 없는 비난은 근절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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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욕하는 것을 듣는 것이 괴롭다고 말하세요.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부인분의 목표는 남편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남편분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지요. 그러니 남편분과 같은 함정에 빠지면 안돼요. 자녀의 예의를 바로잡아주려는 목적과 어디에서 화가 난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남편처럼 말하면 안돼요. 우리의 모토는 이거예요

“감정적이지 않게, 하지만 진지하게.”

만일 사례자분께서 감정과 목표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면 말은 이렇게 나올 거예요

“당신한테 나랑 우리 아들 딸들이 그거밖에 안돼? 필요 없는 존재야?”

이런식으로요. 하지만 그렇다면 남편분은 사례자분의 말의 속뜻 대신 그 감정에 반응해버려요. 자신의 언어습관보다 부인분의 감정에 반응해 자신을 비난한다고 느끼게 되죠. 남편분의 언어습관에 부인분이 반응하듯이요. 인간은 논리보다 감정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되어있거든요.

 

당장은 감정을 표현해서 후련해지긴 하겠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짧게 뱉는 욕설과 험한 말이 결코 남편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듯이요. 우리는 반대로 남편분의 본질보다 남편분의 행동을 언급하기로 하죠. 그리고 감정적이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보기로 하지요. 덧붙여서 본질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행동에 대해서 충고하도록 해봅시다.

“당신의 말이 진심이 아닌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방금 당신의 말에 상처 받았어.”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언급되면 수치스러워하고, 수치심은 우리를 감정적으로 반응해요. 하지만 행동에 대해 언급하게 되면 어떨까요? 우리는 분명히 남편의 진심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언급했고, 그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했어요. 이러한 말을 들으면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다른지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그제야 남편분은 자신의 말을 제 삼자처럼 볼 수 있게 돼요. 그러면 깨닫게 되겠죠. 자신이 전혀 엉뚱한 곳에 그동안 풀어왔고, 그것 때문에 가족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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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말을 꺼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해요. 왜냐하면 새로운 방식의 접근일수록 실패했을 때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질 거라는 걱정이 들거든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부인분이 말씀하신 대로 남편분은 단지 소심할 뿐 착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고요,

처음에는 그냥 겸연쩍어하면서 넘어가려고 할 거예요. 새로운 대화방식은 언제나 어색하고 불편해하거든요. 하지만 불편함을 너무 불편해하지 마세요. 계속 시도하는 거예요.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특히 자신이 편하고 만만한 사람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은 그 감정에 어울려주지 않으면 더 이상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아마 단 한 번으로는 안될 거예요. 가급적이면 부부간에 여러번 불편하는게 좋아요. 그리고 이 차분한 불편감은 부부간의 대화를 바꿔줄 수 있을 겁니다. 여러 번 반복되면 폭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차분함도 습관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감정이 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말이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서로 호감이 있는 두 남녀가 가졌던 막연한 호감이 서로 사귀자는 말을 하자 사랑으로 변하는 것처럼요. 부디 두 부부가 서로의 본질에 대하여 칭찬하고 배려해주고 서로의 행동에 대해서는 충고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은 말이라는 수단에 실려야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은 그 자체로 진심입니다.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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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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