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숲에서 살아남기(2)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상사분은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요. 처음에 제가 이 부서에 들어왔을 때는요 너무 좋은 상사분인 줄 알았어요. 너무 말도 부드럽게 사근사근하고,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요. 본인도 힘든 일이 많아서 힘든 사람 심정을 잘 안다고요.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집에도 한 번 초대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이분이 말한 사소한 것을 한 번 안 지켰던 적이 있어요. 와.. 저 태어나서 사람이 저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봐요. 부모의 원수한테도 저런 말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그 후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요. 문제는 이 분이 너무 무서워요. 이분의 폭언이 무섭다기보다는 이분이 언제 돌변해서 지난번처럼 화를 낼지 모른다는 느낌, 근데 문제는요. 이 분이 어떤 부분에서 화를 내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점이에요. 요즘 직장에서 이분 대할 때 완전 살얼음판이에요.”
때로는요, 굉장히 불안정한 대인관계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러한 분들 중에는 대체로 집에서 부모님과의 애착관계에 문제를 보이셨던 분들이 많아요. 이러한 분들은요. 마치 사람이 두 개가 같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좋을 때는 한 없이 천사 같고 잘해주고, 부하에게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이런 찬사를 보내시다가 무언가 틀어지면 폭언을 퍼붓고,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네가 감히 나한테 이래?” 이런 식으로 뭔가 원한을 표현하는 분들이지요.
심리학에서 Basic trust라는 말이 있어요. 어렸을 때 안정적인 양육을 받았을 때 생기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의미해요. 이 Basic trust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을 하면서도 그 사람과 잘 지낼 수가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호의를 가지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이 Basic trust가 없어요. 그러면 이분들은 대인관계를 할 때 중간이 없게 돼요. 처음에 굉장한 호의를 보내고 삶의 사적인 내용까지 공유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이 분들이 느끼기에 상대방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나에게 충분히 감정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상적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갑자기 돌변하게 돼요. 약간 부적절할 정도로 화를 내고, 언어폭력을 사용해요. 사실 이분들에게 있어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심한 공포이거든요.
문제는 이 분들을 대할 때 대체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거예요.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적 반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설령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저 사람과 다시 잘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근데 이런 분들은요, 한 번 이분들이 화를 내는 걸 보면 이 분들과 인간관계를 하는 게 마치 폭발물 처리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대체 이 사람들이 언제 어느 타이밍에 나에게 화를 내고 원한을 가질지 모르겠는 거지요.
사람이 타인의 감정 반응에 대해서 최소한으로도 예측을 못하잖아요, 그러면 그 맥락 없음에 대해서 심하게 불안감을 느껴요. 실제로 이분 때문에 회사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해요. 왜냐면 어쨌든 직장상사잖아요? 근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직장상사가 저렇게 분노하니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에 죄책감도 느끼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찾느라 정신을 소모하게 되죠.
<Solution>
사실 이러한 유형의 분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이 면담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분들이에요. 이분들을 치료할 때 있어서 원칙은 이 사람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취급할 때 이것을 감정적으로 참고 견디는 것이거든요. 끊임없는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유발된 죄책감과 불안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 분들을 치료하려는 게 아니라 이분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받는 월급은 일을 한 대가로 주는 것이지 이 분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이분들과 여러분 사이에는 감정적 울타리가 필요해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분노를 쉽게 느끼는데, 문제는 이분들 스스로가 이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화가 나고, 불안하게 지금 내 안에서 오는 감정인지 아니면 눈앞에 타인에게서 오는지를 구분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분노의 불똥이 나에게 튈 수가 있다는 게 문제예요.
하지만 이러한 분들은 종종 안쓰러울 때가 있어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되거든요. 이러한 분들의 말에 동조해주지 않으면 왠지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하고, 어떻게든 지지적으로 이들을 대해주려고 해요. 그런데 종종 일어나는 일은 가장 잘해주려던 사람이 이런 분들을 망가뜨리거나 뭔가 나쁜 짓을 한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일이에요. 그러면 당사자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돼요.
나는 도와주려고 한 일인데, 상대방이 ’나로 인해서 상처 받았다, 고통받았다 ‘라고 뭔가 나쁜 짓을 한 사람처럼 몰리게 된다면 아마 회사를 다니기 힘들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게서 유발되는 동정심이라던지, 내가 이분을 도와드려야겠다, 또는 힘이 되어드려야겠다는 구원자 콤플렉스에 끌려들어 가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이건 남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한 가지 다행인건요. 높은 확률로 회사 내 여론이 이분의 편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왜냐하면 분노나 불안이 심하고, 그것이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는 타인에게도 지지를 쉽게 받지 못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분 때문에 내가 회사에서 안됐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나 자신이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는 잘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분들과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거나 개인적인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피하시구요. 항상 모든 업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류를 통해서 처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그리고 이 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뭔가 내 의도와 상관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여러분들의 동료나 주변 사람, 또는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시는 게 좋아요.
“우리가 우리 주변의 타인의 감정을 모두 돌봐주고 감싸줄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부 받아내주는 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불가능해요. 부디 그들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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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