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제 문제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우울증을 앓은 적도 있었고 병원에서 경계성 성격장애라 말을 들은 적도 있었어요. 정신과에는 잠시 다녔었고 계속 병원에 다닐 수 없어서 현재는 직장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싫고, 힘들 때 누구에게 해결될 때까지 매달리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남자 친구랑 싸웠으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카톡으로 친구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면접을 보러 가거나 긴장되는 상황, 혼자 어딘가 처음 갈 때, 가정에 불화가 있을 때, 몸이 아플 때도 계속 내 얘기에 공감해 주길 바라며 톡을 하거나 만나서 계속 그 얘기를 해요. 슬프고 힘들고 감정 소비되는 얘기만 한다고 친구들이 힘들다고 해서 이젠 친구들도 다 멀어지고 없네요. 조금 더 어릴 땐 그렇게 친구들에게 매달리다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가 다시 돌아오길 여러 번 한 적도 있어요.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에게 비난을 당했거나, 남에게 실수를 들켰거나, 그날 뭔가 일이 있어서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거나 등등 맘이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 너무나 기력이 없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며, 자괴감이 들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타인의 행동이 날 싫어하는 행동 같이 느껴져서 ‘날 싫어하면 어쩌지?’, 혹은 ‘날 싫어하게 된 거야. 나도 이 사람에게 정을 주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렇게 느낄 필요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우린 함께할 거야, 느끼거나 잘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다시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데 이땐 말도 많고 장난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져요. 이 순간에서 행복한 감정을 유지할 때도 있지만 또다시 흐트러지는 일이 있으면 또 엄청 우울해져요. 기복이 너무 큽니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남한테 잘 보여야 하는 일 등이 발생하면 그것만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또 그로 인해 일이 엉망이 돼요. 예를 들면 회사에서 이 업무로 인정받겠어! 혹은 이 정도면 식은 죽 먹기지, 금방 하는 걸 보여주겠어,라고 맘이 들면 그때부터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쿵쾅대면서 평소에 잘하던 업무도 침착해지지 않고 숫자를 틀린다든가, 틀린 걸 고쳤는데 저장을 안 누른다든가, 다시 수정했는데 또 수정이 안 되어 있다든가 몇 번이나 실수가 계속돼요.
정리하자면, 계획대로 안되거나 사람들이 날 싫어하거나 자신감이 꺾이면 우울하고, 또 뭔가 다른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그것만 생각하느라 다른 일을 못해요. 또 기분이 좋을 땐 정말 많이 좋아요... 이런 것도 병인가요? 우울증이나 경계성 성격장애, 뭐 불안? 이런 건가요? 약을 먹으면 차분함을 찾을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염려를 하는 현상을 사회 불안(social anxiety)이라 합니다. 사회 불안의 기저에 깔린 생각은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회 불안을 가진 이들은,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타인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말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나 표정, 행동을 과하게 의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질문자님의 경우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따라 감정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에게서 인정받고 있다 느끼면 기분이 금세 좋아지다가도, 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 혹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는 느낌은 기분을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이러한 패턴은, 내 기분을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만듭니다. 타인 의존적인 기분 변화에서, 타인이라는 존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이러한 관계와 감정의 패턴은, 본문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랜 기간 동안 자신에게 누적되어 여러 관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관계는 한순간의 경험으로 그 결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떨어뜨려 바라보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인정, 타인에 대한 의존도 삶에서는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에요. 상대방과의 관계를 너무 밀착해서 바라본다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인 것만 같아요. 의도적으로 타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반응에 몰두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하는 평가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기회가 있으시면 좋겠네요.
이 현상이 병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 상황들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정신과 질환을 진단하는 데 있어, 증상들이 나의 대인 관계, 일상생활, 직장 생활 등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질문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만약 위의 문제가 내 생활에서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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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만나고나서 분노를 좀더 잘 다루게 된 것 같아요"
"신재현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