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회사원입니다. 원래 정신과적 문제는 전혀 없었고,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최근 3개월 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는데,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 단순 반복 업무였고, 갑자기 많은 사람이 물갈이되면서 회사 내부 분위기가 너무 뒤숭숭했습니다. 저도 그 과정에서 사내 정치질, 그리고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가 인수인계도 없이 넘어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평소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웃음이 사라진 지 꽤 됐습니다. 밤에 잠도 오지 않아서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워야 겨우 답답한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인생의 낙이 없다고 느낍니다. 

회사의 거리가 애매하게 멀어서, 고속도로를 운전해야 하는 일이 잦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자동차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는데 가슴 한쪽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어요. 순간 이게 뭔가, 싶었는데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고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운전하면서 그 답답함이 더 심해지고,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정신줄을 잡고 운전을 하려고 해 봐도 뭔가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고, 이러다가 이렇게 차가 많은 고속도로 한 중간에서 기절해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이 너무 심하게 뛰고, 식은땀이 나고, 또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느낌이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어제는 어떻게 운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 와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데, 어제 퇴근길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차를 운전하다 고속도로를 탈 자신이 없어서 금방 다시 회사로 돌아가버렸어요. 차는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응급실에 가서 혈액 검사도 받고, X-ray 검사도 다 해봤는데 병원에서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원인도 모르는데,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운전하다가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운전을 하기가 겁나고, 특히 장거리 운전은 너무 두렵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요?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재현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몸의 반응에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아마 최근 며칠 동안 꽤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께서 겪으신 경험은, 신체적 질환의 가능성이 배제된다면 공황 발작(panic attack)의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공황발작은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반응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보통 ‘기분 나빠, 짜증나’ 정도의 감정을 잠깐 겪다가 지나가는 게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어떤 한계치를 넘게 되면 그때부터는 몸의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비유하자면, 컵의 물이 가득 차 흘러넘치기 직전의 상태가 됐다는 겁니다. 조금만 툭, 건드려도 흘러넘치는 상태인 거죠. 

몸의 반응은 가슴 두근거림, 숨 쉬기 어려운 느낌, 어지러움, 손 발이 떨리거나 식은땀이 나고, 소화가 되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생소한 몸의 반응에 대한 공포감이 심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 이러다 기절하는 거 아냐?’ ‘나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하는 식으로 갑작스러운 기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깁니다. 그 공포는 다시 불안을 만들고, 또 심한 신체적 증상을 유발하게 됩니다

 

공황발작은 공황장애라는 질병의 스펙트럼으로 볼 때 아주 초기에 해당하는 반응입니다. 공황발작이 있다고 공황장애인 건 아닙니다. 공황발작 자체는 인구의 ⅔ 정도는 살면서 한 번씩은 겪는 경험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흔한 증상이라는 거죠. 다만, 공황발작이 반복되면서 운전을 못하거나, 대중교통을 못 타거나 하는 등의 생활의 제약이 생기기 시작한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질문자님의 경우, 우선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회사와 협의하여 배분을 하고, 주말에도 충분히 내가 재충전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휴식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술, 담배, 커피 세 가지가 공황발작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이 시기에는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공황 발작이 간헐적인 시기에는 생활 리듬과 스트레스 관리만으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황발작의 특징은 기절할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은 아득해지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공황발작의 매커니즘은 기절을 하는 원리와 정 반대입니다. 기절은 일시적인 뇌의 허혈 상태로 유발되는데, 공황발작은 오히려 혈압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과호흡 등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유발할 수 있으나, 기절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가능하면 운전은 그대로 하시는 게 도움이 됩니다. 몇 번 운전을 피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도 금세 좋아지고, 또 지나가고 나면 후유증이 없다는 경험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피해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운전을 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점차 다른 활동에서도 피해야만 안전하다는 생각이 번지게 됩니다. 

증상의 초기에 정신과를 방문하여 불편함을 덜어주는 약을 얼마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너무 염려 마시고, 증상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생활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증상은 우리를 스쳐서 지나가는 작은 이벤트가 될 테니까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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