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심한 우울감을 느꼈고, 그 후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울감이 심해졌습니다. 집에서는 항상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던 저는 제 감정을 말할 수 없었고, 그렇게 중학생 때 학교에서 큰 갈등을 겪음과 함께 자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제가 진짜로 죽어버릴 것 같아, 결국 엄마께 말씀드렸지만 제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지,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진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라는 말들로 저를 더 위축시켰습니다. 그 후에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했지만, 짜증 섞인 말투로 회피하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저는 그저 밝은 아니 사실 밝은 척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어, 주변 정신과를 찾아보았는데 제가 아직도 이렇게 힘들다는 것과 혼자서 정신과까지 갔다는 걸 부모님께서 아시게 되면 또 어떤 갈등을 일으킬지, 어떻게 반응하실지 저는 더 이상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사실 이제는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르겠는 지경입니다. 가끔 숨이 막힐 것 같은 패닉이 오고, 그때마다 주변 친구들 눈치를 보며 표정 관리에 애를 쓰지만, 이제는 참기 힘들 정도로 패닉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부모님께 다시 한번 말씀드려보라고 하지만, 저에겐 중학생 때 참다가 결국 힘들다고 처음 말했던 날이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어 말 한마디 꺼내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정신과를 가고 싶은데, 정신과의 문턱은 그것도 청소년에게 정신과 문턱은 참 높더라고요. 부모님이 모르시게 하고 싶다면 비보험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 용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험처리를 하면 연말정산을 하실 때나 서류 신청을 하다가 알게 되실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자녀가 성인이라면 알 수 없다던데, 성인이 될 때까지 더 버텨야 하는 걸까요?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부모님이 아실 확률이 낮다면 그냥 위험을 무릅쓰고 다녀볼까 하는데, 연말정산 때 무조건 들킬까요? 연말정산 때 말고도 들킬 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도와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질문자님의 절박한 심정이 글에서 느껴져 참 마음이 안타깝고 아픕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조차 내 마음을 편안히 이야기할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먼저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면, 청소년이라고 해서 진료를 혼자 받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부모님과 꼭 함께 진료를 보아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연말정산의 경우 연말정산 시 신고를 제외시켜 달라는 요청을 병원에 하면, 연말정산에 정신과 방문 기록이 뜨지는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혼자 진료받는 것이 가능은 합니다만, 사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치료에 부모님을 배제하고 치료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학대의 가해자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그런 경우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가 우선이겠지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님을 치료에 참여시켜 생활 환경을 잘 조성하거나, 적어도 정신과 의사와의 가족 상담을 통해 아이의 상태에 대한 이해를 시키는 것이 꼭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님의 마음의 상처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느낀다면 감정 표현을 잘 받아주지 못했던 가족 환경의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상처에 대해서만 치료하는 것보다 부모님의 태도를 함께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치료의 과정 중 하나가 될 테고요.

또 하나의 이유라면, 치료의 지속성 때문입니다. 비급여 치료든 보험을 통한 치료든, 청소년 입장에서는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갈 텐데, 정신과 진료는 단기간의 진료보다는 약물치료든 상담이든 어느 정도의 기간은 필요합니다. 일회성 치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조바심이 생긴다면 좌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힘들다면 학교 내 위 센터와 같은 심리 상담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먼저 학교 내 상담 선생님이나 위 센터를 방문하여 자신의 상태를 평가받고, 학교를 통해 부모님에게 정신과 진료 필요성을 알리는 방법으로요.

정신과에 대해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 이에 대해 잘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이나 신문 기사들이 많을 테니 이를 공유해 알려드리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정신과에 갈 때도 ‘치료’를 위해서가 아닌 ‘평가’를 위해서 먼저 방문하는 것임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초기 방문을 통해 평가를 하고 난 후, 우울증 및 여러 마음의 문제의 가능성을 부모님과 함께 설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신과에 대한 이 사회의 편견이, 이러한 어려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배가 아프거나 팔이 다치면 아이 혼자라도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한데, 마음이 힘들 때 정신과를 가는 것은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여깁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부모님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정신과 방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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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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