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정신의학
[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역사 속 폭력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는 유독 많은 폭력이 존재한다. 외국의 침략이 잦았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침략과 전쟁에는 군대가 필요하며, 그래서 학교와 학생들이 군대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었다. 군대 문화의 핵심은 상급자에 대한 복종이기에 폭력이 잘 생기고 쉽게 은폐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며 이런 문화도 개선됐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직장이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며 이직이 많아지고 또 SNS도 발달하면서, 폭력을 은폐할 수 없기에 생긴 변화다. 그래서 요즘에는 직장 내 신체적 폭력을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도 은폐가 가능한 곳에는 폭력이 남아 있다. 군대, 예체능 계열, 의료계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직업군은 여전히 은폐가 가능하기에 지금까지도 폭력이 살아있다. 폭력의 원인은 가해자이다. 피해자 특성은 폭력의 발생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폭력이 은폐되고 지속되는 것은 환경이나 피해자 특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환경과 피해자 지원으로 폭력의 발생 자체를 예방하기는 어렵지만 폭력이 은폐되고 지속되는 것을 예방할 수는 있다.
성과. 종목과 상관없이 모든 스포츠가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이다. 하지만 성과 위주의 생활 및 훈련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조사나,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막아 상황을 악화시킨다. 또 관리자 자신이 또 다른 폭력 가해자인 경우에는, 자신의 담당한 선수들의 폭력 상황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의 폭력도 정당화시켜버리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팀 플레이가 중요한 종목의 경우는 소수인 피해자가 팀의 단합과 성적을 위해 더 외면당하기 쉽다. 그래서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도 생긴다. 그렇게라도 운동을 계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는 경우에도, 마음의 병은 찾아온다.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는 경우에도 주위에 쉽게 알릴 수 없기에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말 나를 위한 사람이라면, 내가 폭력 피해를 받았다고 얘기했을 때 비밀을 지켜주며, 나를 지지해주고, 함께 대처 방법을 찾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가 함께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든다.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법적으로 비밀 유지를 해야만 하는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존감 회복 역시 중요하다. 고립된 상황에서 당하는 폭력은 한 사람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망가뜨린다. 자신의 가치와 장점을 잃게 되며 이는 결국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고립이 더 심해져 상황이 악화된다. 자존감 회복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과 연락이나 만남을 늘리면서 회복할 수 있다. 추억 속의 행복을 다시 떠올리고, 함께 하는 순간 속에 있는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발견할수록 자존감은 단단해진다. 또 5년, 10년 뒤 미래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목표를 상세하게 떠올리는 것 역시 힘든 시기를 견디며 자존감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회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와의 분리, 가해자의 처벌, 그리고 적절한 보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이 아직은 이뤄지기 힘들고, 나이가 중요한 체육계 특성상 처벌과 보상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연속된 폭로로 가해자 스스로가 폭력을 포기하고,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폭력 피해 선수 모두가 체육계의 폭력을 없애기 위한 개척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폭력으로 인한 부당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피해 선수 개인과, 건강한 체육계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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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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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