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12)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각종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가려 뽑는 경연이 많다. 경연에서 1등을 하거나 입상하면 공식적으로 가수가 되는 동시에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무명 가수의 설움을 말끔히 털어내고 스타가 되는 사람도 있다. 하루아침에 부와 명예를 양손에 거머쥐게 된 것이다. 행운의 주인공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기업의 꽃이라는 일류회사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 말단 공무원으로 입문해 고위 공직자가 된 사람,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임용된 사람, 문학상을 휩쓸면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사람, 여러 번의 낙방 뒤에 마침내 고시에 합격한 사람,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선거에 당선되어 원하는 지위에 오른 사람……. 우리는 이들을 성공한 사람이라 부르며 부러워한다.

그런데 부러움의 대상인 이런 사람 중에는 마냥 기쁨과 행복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며 괴로운 심정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 보통 사람은 꿈꾸기조차 힘든 값진 열매를 성취한 사람, 이런 사람이 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반대인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걸까?      

 

사진_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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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성공에 대해 어떤 사람은 역설적인 우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상상도 못 했던 행운이나 보상이 갑자기 밀어닥쳤을 때, 더 많은 책임감이나 의무감 등을 불러일으켜 우울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으나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맛본 사람들은 흑백논리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해 인생의 목표를 성공에 두는 경우가 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강박은 성공에 대한 강한 갈망과 집착과 노력을 불러일으켜 실제로 성공에 이르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에는 끝이 없고, 만족이 없으며, 작은 성공 앞에는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성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든 실패를 맛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에 대한 극단적인 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언제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강렬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많은 경우 이러한 두려움을 투사(projection)하여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생각하면서 편집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고 질투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혹시라도 자신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투사의 반대 개념인 내사(introjection)에 이르기도 한다. 투사가 내적 갈등을 외부의 원인으로 돌려버리는 방어기제라면, 내사는 내적 갈등을 자기 자신의 본래 문제로 삼켜버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어렵사리 성공을 이루었더라도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무능력하며, 그 자리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당연한 두려움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지? 꿈일 거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얻을 만한 사람이 못 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야.’     

자신을 향한 주위 사람들의 갈채와 찬사, 부러워하는 시선 등이 견딜 수 없이 부담스럽다.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늘어나고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어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란 실체를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불안이 밀려든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에게 향했던 갈채와 찬사가 비난과 손가락질로 변할 게 뻔하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위축되고 결국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실력이 뛰어난 의사가 있었다. 권위 있는 한 임상 프로그램을 지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자기가 맡기에는 과분한 자리라고 여긴 것이다. 자신은 아직 그럴 정도의 실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요청이 거듭되자 결국 승낙했다. 주위에서는 권위 있는 임상 프로그램을 지휘하게 되었으니 대단하다며 부러워했다. 성공적으로 일을 끝내면 의학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명예를 얻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했다. 상급자에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지만, 상급자는 충분히 잘 해낼 자격과 실력이 있다며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상급자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상상된 무능력으로 인해 환자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다. 성공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자신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사진_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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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나 내사, 두 가지 모두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패하면 절대 안 돼.”

“실패는 곧 인생의 패망이며 죽음이야.”     

이런 이분법적인 믿음이 깔려 있기에 강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의 성공과 행운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결과에 이르는 과정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남들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자기 자신의 미숙과 결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며 눈물을 삼킨다.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 짓기를 갈망한다. 불행은 늘 나를 비켜 가고 행운은 항상 나를 찾아오길 기도한다. 그러나 성공을 이루고, 행운을 거머쥐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성공을 이룩한 다음, 행운의 여신이 나를 향해 미소 지은 다음, 내가 얻은 성취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가 인생의 목적이다. 목적 없이 성공과 행운이라는 목표만을 좇아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성공과 행운이 찾아왔을 때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두려움에 빠질 위험이 있다.

현대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 하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성공은 성과나 소유가 아니라 가치였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는 아니다. 오히려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만약 당신이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원시림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 역시 이런 말을 남겼다. 그가 바라본 성공 또한 성취보다는 행복에 있었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걸까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걸까? 해답은 각자가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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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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