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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여성의 자존감을 위하여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7.03 04:12

[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결혼 후에 직장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5년 정도 했고 퇴사한 지는 2년째입니다.

처음 3개월 정도는 후련하기도 하고 잠도 실컷 자니까 좋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잡념이 늘어나면서 살짝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아이는 없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최근에는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남편 뒷바라지와 집안일을 아무리 해도 성취감은 잘 느껴지지 않고 점점 자존감도 떨어집니다. 이런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기도 왠지 자존심이 상해요.

퇴사하고 마음 건강을 좀 잃은 것 같아서,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이에요."

 

사진_픽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행복하다며 느끼고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느낌이 필요합니다.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안전하다.”

그런데 사연을 주신 분은 결혼 후에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남편이 있지만, 남편에게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으니까 더 그런 것 같고요.

 

여러 가지 여건상 어쩔 수 없이, 혹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서 살아가시는 분들 중에서, 우울증으로 상담하거나, 심한 경우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혼자서 집 안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라도, 지금처럼 우울한 상태에 집 안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감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꼭 무엇을 하겠다, 이런 부담 갖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 나면 콩나물 하나 사러 가더라도 일정하게 마트에도 가고. 식사하고 나면 집 주변을 산책하고. 가까운 도서관이나 극장에 가기도 하고.

가능하면, 문화센터 같은 곳에 등록해서 일정하게 활동을 하도록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작은 것이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셔야 합니다.

재취업이 당장 쉽지 않고, 또 임신과 출산을 생각하신다면 선뜻 취업에 나서는 것도 주저하게 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셔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요.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만 해도, 이걸 한 달 동안 꾸준히 하고 나면 이것도 성취감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아니면 바리스타 수업이라던지, 홈패션 수업을 찾아 들으시는 것도 좋고요.

 

사진_픽셀

 

이런 비슷한 사례를 보면 많은 경우에 '뭔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구체적이지는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시고요.

처음은 무엇보다 구체적인 계획, 작고 사소하더라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미리 유념하셨으면 하는 점은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서 하겠다'라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정말 좋은 계획, 나에게 잘 맞는 실천 방안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거든요.

일단 이것저것 즐기는 마음으로 편하게 시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하기 힘든 이유만 떠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우선 해보고 결정하겠다'라는 마음가짐이 더 좋습니다.

이런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그저 "생각만으로 마음만으로 이겨내자"라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이 필요합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문화 센터에 나가고, 강의 신청을 하고, 가죽 공예를 시작하고, 꽃꽂이하고 등등 무엇이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친구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실제 내 속마음을 다 얘기하기도 쉽지 않아하시는 것 같고, 남편한테 얘기하자니 비참한 느낌을 갖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인데요. 가족과 함께 사는 데도 가족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끼면, 그 소외감이 혼자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보다 더 괴롭습니다.

 

이런 경우도 '꼭 소통하겠다'는 생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말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왔는데, 커피향이 너무 좋더라. 커피 만드는 기술이 조금 늘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등등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부담 가지 마시고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사진_픽셀

 

자존감은 행동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아무리 자기 주문을 외워도 자존감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잠시는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는 있어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자존감은 성취 경험들이 쌓여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꼭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산책을 했다, 매일 신문 경제면을 꼼꼼하게 읽었다, 봉사 모임에 가서 활동했다, 바리스타 교육에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나갔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기보다는, 활동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993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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