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굳이 자신의 모든 모습을 모두에게 다 보이고, 심지어 '바닥까지 다 보이고' 타인에게 수용되고 인정받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의 엄마는 과연 여러분의 모든 면을 다 사랑할까요?

여러분 엄마도 여러분을 다 수용하지 못합니다. 구석구석 미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고요. (제 경우도 별다를 것 없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모든 면이 사랑스럽지 않아 자꾸만 타인에게 내어 보여 안심시켜주길 바라는 것이잖아요.

 

타인이 우리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잘못된 신념입니다.

굳이 자신의 모든 면을 모두에게 다 보여서 '이래도 나를 사랑해? 이래도?' 하며 타인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도 아니고,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어떤 성과도 없을, 잘못된 기벽일 뿐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상적인 주 양육자는 피양육자에 대해, 적절히 관여하고, 적절히 민감하고, 적절히 반응적이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보호자들의 돌봄 패턴은 흔히 미숙하고 비일관되거나 예측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애착관계에 불안감이 가득 끼게 되면, 영원한 관계 혹은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병리적 갈망이 솟아오릅니다.

서로 조금씩 상처받고 조금씩 상처 주면서 굳은살이 배기듯 탄탄해지는 신뢰로운 애착관계보다는 자신을 완전하게 해주는 영혼의 구원자가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판타지도 보입니다.

 

의미 있는 대상이 다소 심드렁해 보이거나, 독립성을 보일라치면, 그때부터 또다시 절박하게 애정결핍을 호소합니다.

너도 나를 버리겠지, 혹은 나를 안심시켜줘, 하며.

자신의 일상들로 이미 지쳐있는 주위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정말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그거 보라'며 절망과 자기 비하를 경험하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했는데 내게 부당하게 대우를 한다'며 급작스러운 분노감에 압도되기도 하고요.

 

우리는 모든 일에서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둘째 문제이고, 다시 말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서로의 기억은 엇갈리고, 어차피 서로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마음대로 시시각각 바뀝니다.

당신이 어느 날은 친구와 말이 잘 통할 때가 있고, 어느 날은 조금 낯설 때가 있듯.

 

물론 많은 대인관계 문제가 실제로 불안정 애착에 기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 및 연구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제안되는 것은, 실제로 어떤 애착관계였는지 보다는 그래서 정작 지금의 본인은, 당시를 어떤 애착관계로 규정하고 있는지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가족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본인이 그 상황에 대해 <일관되고 성숙한> 태도로 <재구성하고 수용>하는 것을 통해 안정 애착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과거의 애착관계를 다시금 돌아보고 통합하려 할 때, 수치심과 죄책감 같은 부정적 자의식(self-conscious) 정서가 개입할 여지를 주면 안 됩니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할 존재여서가 아니고, 당신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존재여서가 아니고, 당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인 것도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렇게 말해 봅시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나는 취약했지만,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의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는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을 지키겠다. '

 

이런 생각과 태도가 마음 깊이 안정적으로 배어들 때까지, 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와 재양육 관계를 경험하거나, 혹은 베개 같고 이불 같은 무던한 사람과 재양육 관계를 경험하거나, 혹은 내가 내 스스로를 재양육 할 필요가 있습니다.

UCLA 정신과 임상교수인 Dan Siegel은 이렇게 애착관계를 재형성할 때 뇌가 재배선(rewire the brain)된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니 그렇다고 치고, 해보세요.

이제 당신이 당신의 양육자예요.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응하기를 그만두세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세상에서 내가 나를 제일 잘 압니다.

 

사랑을 시험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당신을 채우려 하지 말아요.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지만, 또 아니면 마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차츰 우리 자신과 안정 애착하면 됩니다.

기만적인 표현들로 자신을 속이고, 어쩌면 틀렸을지 모르는 연애를 시작하고, 답 없는 연애를 지속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의존성을 더욱 짙고 깊고 크게 만들지 말아요. 지금까지의 생을 버텼던 스스로를 기특하다 축하해주고 스스로를 안전하게 품어주세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면 내가 내게 맛있는 것을 사 먹이세요.

마음이 따듯해지고 싶다면 향초를 켜고 깨끗한 담요를 두르고 따끈한 차를 마시고 따듯한 노래를 틀어서 자신을 돌보고 자신이나 타인에게 사랑스러운 말을 건네세요.

모두 연구 결과 행복감에 대한 그 효과가 입증된 것들입니다.

 

사진_픽셀

마지막 잔소리를 덧붙이자면, 기억은 서로 다르게 적힙니다.

그러니 특히 불안으로 관계와 자존감이 흔들린 나머지 '내가 기억한 내용'을 가지고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애인과의 말싸움 중 젤 소모적인 부분은, "네가 그랬잖아!" / "네 표정이 그랬다고!" / "네가 말을 비꼬았잖아!"입니다.

이때 최대한 빨리 누구든, 서로의 기억은 늘 다를 수밖에 없다 선언하고 맥을 끊어야 합니다.

평행선을 그으며 미친 듯 달리는 기억이 감정선을 건드리기 전에.

 

어차피 해결이 안 나는 문제이고, 이걸 가지고 다투겠다는 건 헤어지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당신도, 그 사람도, 지금 헤어지려는 게 아니잖아요.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세요. 일이 되게끔 하세요.

자존심 세우기, 인정받기,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감정을 존중받을 권위와 위엄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편안한 문장으로 표현을 하고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안정 애착을 하고 있다면, 이런 모든 것들은 더 이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괜찮아요.

 

그래서 오늘 시도해볼 것은 이렇습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이야기해 볼 것.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의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을 지키겠다.'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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