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내가 이래도 날 사랑해줄 거야? 너도 결국 떠날 거야?”

 

A는 자기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을 '애정 결핍이 있는 애착 장애'라고 했다. 단호하게 본인의 '병'을 명명하는 A는 남들에게 버려지는 것, 유기에 대한 불안이 높았다. A는 그 원인을 과거의 관계들에서 찾았다.

 

"제가 왜 이러는지 알아요. 부모님이 맞벌이라 저를 돌볼 시간도 부족했고, 실제로 부모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았어요. 제 앞에서 서로 소리도 지르고 가출도 하셨던 것 같고.

간혹 좋을 때엔 저한테도 너무 잘해줬다가도, 안 좋을 때에는 없는 자식 취급하고. 엄마도 우울증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 땐 되게 마음이 절망적이면서도 필사적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처음 사귄 애가 바람나서 헤어진 적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졌어요."

 

이번에 치료 장면을 방문하게 된 동기도, 얼마 전의 이별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저한테, 나는 널 절대로 안 떠난다, 이러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사귀는 동안 제가 또 집착을 하기도 했고, '나 떠날 거냐', '그래서 이제 내가 싫어졌냐' 이런 소리를 농담으로든 싸우면서든 제가 계속하니까 이젠 좀 지친다고..."

사진_픽셀

연애와 이별의 패턴은 반복되었다.

상대는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며 많은 시간을 들여 A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그럼에도 A는 좀처럼 편안해지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순간 '심장이 단추처럼 뜯어져 땅에 구르는 듯한' 불안과 초조감을 느꼈다.

기분이 좋을 때에도 불현듯 슬픔이 물밀듯 밀려들어왔고 자주 비참하고 버려진 느낌이 들었으며 때론 몸까지 아파왔다.

 

어쩌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등의 사소한 일들에도 본인이 싫어진 것은 아닌 것인지 기어코 닦달을 하며 확인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싫어?', '너도 똑같아', '거봐, 내가 너도 나한테 지칠 거라 했지' 따위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똑같은 레퍼토리의 시작을 알렸다.

관계에 큰 문제가 없을 때에도 가상의 시나리오까지 들이밀어 시험에 들게 했고, 곁을 지킬 거라 수백 번은 말해 온 상대를 점차 지치게 만들었다.

 

사귀는 사람뿐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애착 문제가 있는 애정결핍 환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내심 의존하는 바가 컸기에 A는 '대인인 척 애쓰다 결국 호구가 되었다'고도 했다.

사람들을 곁에 두기 위해 과도한 요구, 응하고 싶지 않은 약속들에 늘 타인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해주었다.

그 때문에 쌓이는 정서적 고통감은 고스란히 사귀는 사람에 대한 불안,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정서성으로 누적되었다.

 

"자기주장 잘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을 보면, 저랑 아예 종이 다른 사람들 같아요. 저는 항상 사랑에 굶주린 느낌이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고. 그런데 또 보면 제가 사람들한테 기생하는 건지, 그 사람들이 저한테 기생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진_픽사베이

 

애정 결핍을 말하는 분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자신의 의존성과 취약성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중 흔한 이야기는 애착 장애.

실제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진단 중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장애(*)는 없고요.

 

안정 애착, 불안정 애착 등의 주제는 미디어의 단골 소재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쉽게 본인을 불안정 애착으로 여기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 유명한 Ainsworth의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의 70%가 안정 애착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슬픔에 빠졌지요.

'절대다수가 안정 애착인데 나는 어째서..!'

그러나 해당 연구는 1978년의 결과였습니다. 안정 애착이 실제로 많았을 수도 있고, 방어적인 태도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는.

 

2009년의 대단위 연구의 결과는 조금 다릅니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불안정 애착이라고 보고한 비율은 48%, 안정-자율형 애착이라 자부한 비율은 52%(Adult Attachment Interview, AAI 분류에 따름)였습니다. 둘 중 하나는 불안정 애착인 것이죠.

심지어 임상군은 73%가 불안정 애착이라 보고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흐른 지금, 안정 애착 비율은 더 줄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불안정 애착이라는 것, 생각보다 흔합니다. 실제로 부모에게 아이의 안정 애착만큼 어려운 과업이 없지요.

 

부모에게서 안정적인 양육이나 관심을 받지 못해 애정결핍이 되었다,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이나 집착을 지나치게 한다고 보고하는 분들은 불안정-불안(불안-집착형)의 애착 유형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자기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타인의 인정에 예민해져 있습니다.

사진_픽셀

특히 거절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 있어 본인이 재미없거나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임을 상대가 알아챌까 하는 걱정으로, 혹은 의미 있는 대상이 자신을 떠나거나, 거절하거나, 배신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타인에게 절박하게 매달리고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심도의 우울감과 무력감도 경험하고요.

특히 합리적인 수준의 자기 주장성이나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하고 수동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데, 이러다 보니 관심을 끌기 위해서나 자신을 안심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에 괜히 문자메시지를 안 읽은 척하거나, 잠수 탄 척하거나,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SNS 등에 간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질투를 유발하는 등의 미숙한 태도도 많이 보입니다.

 

이런 불안 특징적인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보면, 스트레스 조건 하에서 양쪽 편도체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활성화됩니다.

거절과 관련된 고통감과 관련성이 높은 뇌 영역들인 배측 전대상 피질과 전측 뇌섬엽에서의 활동성 또한 증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들의 배측 전대상 피질은 과도하고 불필요하게 뇌의 다양한 영역과 기능적으로 엉겨있습니다.

결국 타인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하고 끝없는 자책감과 불안정감이 올라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불안정한 애착 유형의 10대들에게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 형용사를 보고 자기 자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평가해달라 하면, 긍정적인 단어든 부정적인 단어든지 간에 양쪽 편도체와 부해마, 전측두엽과 전측 상측두회, 좌측 배외측전전두피질의 활동성이 모두 증가해버리는 것처럼요.

내게 어떤 애착 경험도 제공해주지 않는 보호자를 이미 마음으로 포기했고 그 외의 사회적 관계 역시 모조리 회피하려는, 회피 특징적인 애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해당 영역들에서 감소된 신경학적 활동성을 보이고 세상에 문을 걸어 잠그는 것과 반대의 패턴이지요.

사진_픽셀

 

부모의 과민한 뇌 특성이 아이에게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측면도 분명 있지만, 양육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잘 동기화 되어 있어 아이에게 기민하고 시의적절하게 반응해주는 양육자는, 보상적 자극과 정서를 조절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좌측 중격핵의 높은 활성화를 보입니다.

이들의 중격핵은 정서 처리의 핵심 영역인 편도체와도 조직적인 관련성을 보였고, 연구자들은 이것이 정서 자극에 대한 효율적인 처리를 가능케 하는 신경 기반이라 추정했습니다.

반면 불안한 양육자는 우측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인 수준의 중격핵-편도체 간 기능적 관련성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타인의 정서적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부모의) 뇌가 또 다른 역기능적인 (아동의) 뇌를 양산해버리는 것이지요.

 

더욱이 수십 년 전의 주 양육자라 할 만한 사람들은 애착이 무엇인지, 이것이 왜 개인의 행복감과 불행감에 중요한 요인인지 몰랐고,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몰랐으며, 특히 어떻게 애정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권위를 공고히 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애착관계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형성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권위 있음'와 '권위적임'을 헷갈려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시간, 거리, 경제적 상황, 형제의 존재 등의 물리적 제약으로 실제 안정 애착의 형성이 불가한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본인의 애착 관계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본인 스스로든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든, 안정 애착을 촉진하여 뇌 기능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팁을 찾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원가족에게, "그때 내게 왜 그랬어?" 하고 화를 내기에 우리는 너무 자랐고, 그렇다고 불안정한 관계로 받았던 고통감을 없던 일로 하고 지내기에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뇌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우리를 조금씩 속이며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사진_픽셀

사랑하는 연인들이 안고 있는 모습처럼, 편안하고 안온하며 애정 깊은 애착관계를 표현한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 자극에 대한 편도체의 활성화 수준이 약화되었다는 연구가 2015년에 발표되기도 했지요.

의미 있는 대상이 나를, 혹은 나 스스로가 나를, 안정적으로 아끼고 보살폈던 순간의 기억이 있다면, 이러한 정신적 표상을 천천히 떠올리는 심상화 작업을 통해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도 좋겠습니다.

혹은 정말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그저 애틋하고 따듯한 관계의 사람이나 동물들의 사진을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따듯한 목욕을 하고 따듯한 차를 마셔 마음의 냉기를 가시게 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연구로 입증된 바도 있고요.

 

그리고, 또다시 관계 불안에 휘둘려 상대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점점 자존심 싸움이 파국으로 갈 기미가 보인다면, 최대한 빠르고 분명하게 그 사람에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내가 알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을 네가 안다. 어차피 1년 후에는 오늘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못할 일로 이렇게 서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싸우고 싶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본인이 능동적으로 관계를 지켜내세요.

혹은 자신의 불안정 애착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거나 때로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불한당들에게서 자신을 지켜내세요. 모든 관계가 그런 비참함을 동반하지는 않습니다.

가늘지만 천천히 길게 이어지는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우리를 안정 애착의 범주 안에 차츰 안착시킵시다.

 

* 양육자에게 극도로 억제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아무에게나 비선별적인 애착 반응을 형성하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반응성 애착장애 Reactive Attachment Disorder>란 진단은 5세 이전에 시작되었을 때에만 진단 내릴 수 있는 장애로, 흔히 영양실조, 성장지연, 또래 대비 저체중, 잦은 병치레 등을 동반합니다.

스스로를 함부로 '애착장애'라 라벨링 하지 맙시다.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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