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하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약주’라는 말이 있다. 1~2잔 정도의 술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이제 누구나 아는 기본상식이다.

술을 마시면 잠도 잘 오고, 기분도 좋아진다. 술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서로에게 술을 권하는 데에 주저가 없고, 때로는 매스미디어마저 앞장서 음주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런데 정말 술이 약이 될 수가 있는 것일까?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술을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또 아무리 소량이거나, 어떤 상황에서라도 음주의 이점은 없다고 발표했다.

2017년에는 한국인의 경우 소주 1∼2잔(30g)의 가벼운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국내 성인 2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 5년간의 추적연구 결과, 대표적인 소화기암인 식도암의 경우 소량의 음주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암 발생 위험이 1.5배까지 상승했고, 대장암과 위암도 발생 위험이 각각 12%, 5% 높아졌다.

음주에 흡연을 곁들인 경우의 소화기암 발생 위험도_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

술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논란이 있다.

우선 이들 연구는 주로 서양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유전자군이 많은 한국인에게는 다른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

2017년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147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흡연과 비만, 당뇨병 같은 심장질환에 대한 잘 알려진 위험인자의 영향을 보정한 결과, 알콜 남용이 심장마비 발병 위험을 40%가량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는 심방세동이나 울혈성 심부전 같은 심장 질환의 위험 또한 높인다.

 

물론 술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직 논란거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술의 해악은 매우 분명하다. 심혈관 질환의 예방에는 술보다는 건강한 생활 습관, 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이 명확하다.

이를테면 매일 중독의 위험을 무릅쓰고 1~2잔의 술을 먹느니, 전문의에게 심혈관 질환의 예방이 필요한 체질인지 상담을 받고, 아스피린 한 알씩 먹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안전할 수 있다.

사진_픽셀

술이 수면이나 마음을 위로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잠을 못 자는 사람들에게 술은 최악의 선택이다.

사실 술은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술은 기본적으로 수면의 질을 저하시킨다.

최적의 수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렘수면을 방해하는 데다가, 갈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 하고 자주 깨게 된다.

게다가 술을 먹고 잠에 잘 들려면 한 잔, 두 잔 술을 늘려야만 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술에 내성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은 오지 않고 괜히 짜증이 나거나 불안하다면 금단 증상이 시작된 것을 의심해야 한다.

단지 나는 잘 자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술에 대한 의존만 남고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된다.

 

또한 알코올은 마음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여러 정신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충동 억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신경전달 물질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의 기능을 저하시키고, 금단증상이 발생되면 불안, 불면이 심해진다.

그 결과, 술에 의존한 사람들은 기분장애는 3배 이상, 우울은 4배, 양극성 장애는 6배 이상이 높다. 공황장애는 2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2배 이상 높다고 보고되었다.

알코올의존환자의 공존질환 위험율_Klimkiewicz et al. (2015). Comorbidity of alcohol dependence with other psychiatric disorders. Part 1. Epidemiology of dual diagnosis, Psychiatrica Polska 49(2): 265-275

술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와 같다. 대부분 검증이 필요하거나 사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현실적으로 술은 ‘약’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독’에 가깝다. 게다가 의존성이 있어, 독성이 치명적인 순간에 이르기 전에 조절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술을 마시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항상 경계하고, 음주 습관을 관리하여야 한다. 술은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적당한 음주 습관을 위한 8가지 체크리스트>

1. 심장마비와 각종 안전사고 등 폭음의 위험성을 스스로 인지하라

2. 술을 경쟁하듯 마시거나 강요하는 자리는 되도록 피하라

3. 자신에게 적당한 음주량을 파악해 식사처럼 조절하라

4. 무조건 천천히, 알코올은 가속도가 잘 붙는 것 중 하나다

5. 무알코올 음료와 친해져라

6. 주량을 주변에 공개하라

7. 섞어마시는 폭탄주를 자제하라

8. 술은 인류역사와 함께 해왔지만 사회적 기능이 핵심임을 잊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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