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 고민 끝에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아버지 없는 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이유 없는 죄책감, 애초에 없었던 빈자리를 인정하는 데만도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작은아버지입니다. 자주 저를 찾아오셔서 좋은 말씀도 무척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릇된 길을 가지 않는 데 작은아버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그런 작은아버지의 간암 말기 투병 소식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에요. 그리고, 일주일 전 작은아버지는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다시 저에게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빈자리가 생겨버렸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혼절할 정도로 울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작은아버지는 차가운 땅 아래에 계십니다.

사진_픽셀

문제는 지금 저의 상태입니다. 너무 우울하고 슬퍼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요. 자꾸 돌아가신 분의 말씀과 그 모습만 생각납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 중 작은아버지의 음성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진작 알았다면, 작은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제가 작은아버지의 건강을 챙겼더라면... 자꾸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만 생깁니다. 잠도 쉽게 들지 않고, 눈을 감으면 그 날의 장면이 떠올라 자꾸 깨어납니다. 이러니 회사에서의 일은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같으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A) 중요한 대상의 상실은,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심리적인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질문자님의 말마따나,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 주셨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니 그 슬픔이 오죽할까요.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고민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힘드실까요.

 

인간은 태어나 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그 인연의 깊이나 길이와는 상관없이, 헤어짐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아픔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상실 이후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슬픔의 시기를 '애도 기간'(bereavement period)이라고 부르죠.

상실의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익숙함을 조금씩 떨쳐내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별을 애도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갓 상실을 겪은 현재 상태는 굉장히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마음 안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분이라면,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다만, 현재 겪고 계시는 우울, 초조, 불면, 돌아가신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 등은 이 애도기간 동안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입니다. 극심한 상실에 대한 고통은 우리가 평소 겪지 않았던 여러 가지 증상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를 애도반응이라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중요한 것은 상실 후의 애도반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애도 반응의 기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극복될 것입니다. 아마 힘드시겠지만, 혼자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기보다 가까운 이들과 이러한 감정을 공유하고 충분히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슬픔이겠지만, 이를 마음에 담아두고 눌러놓는 것은 더 힘든 후유증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슬픔 때문에 기존에 하던 활동들을 중단하는 것은 상처가 회복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활기찬 활동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외부 활동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슬픔을 마음 안에 붙들어 두는 행동입니다. 가능하면 일상에서 하던 루틴을 그대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좋든 싫든 ‘견디는 것’입니다. 떠난 이를 애도하는 일은 참 어렵고 고통스럽지요. 아마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익숙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께 필요한 단 하나의 사실은, 세상이 모두 무너질 것 같은 슬픔도 결국엔 지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애도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상처의 치유 정도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만, 애도의 시간을 현명하고 건강하게 보내어야 떠난 이들을 더 잘 애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애도 반응이 삶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떠난 이의 모습이 보이고, 그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등의 환각 증상이 나타나거나 계속되는 불면, 무의욕, 우울감, 죄책감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 대인관계,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면 우울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상담 및 진단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애도가 우울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치료가 꼭 필요한 상태입니다.

부디 질문자님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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