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으로 오랜 아픔을 겪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도 많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도 많았습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 세상에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긴 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열지 못했어요. 그래서 내 속내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손으로 꼽힐 정도예요. 그나마도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었어요. 남자 친구를 몇 번 사귀었지만 모두 저에게 ‘차갑다’, ‘마음을 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며 떠나갔어요. 저 스스로는 담담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처가 너무 깊이 남았어요. 외롭고 힘들었어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 치료를 시작했는데, 의사선생님께선 저를 잘 이해해주고 많은 위로와 공감을 해주셨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던 속내를 조금씩 꺼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부끄러운 이야기에도 많은 위로를 해주셨어요. 치료를 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꾸 선생님이 떠오른다는 거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아, 이 이야기는 선생님께 해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고, 선생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혼자 상상하기도 하고요. 막상 진료할 때는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으면 상처를 받기도 해요. 이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위로를 받으러 가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찾아보니 이런 감정이 ‘전이’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을 옮길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정신병 같은 다른 문제들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사연에서 질문자님의 애틋한 감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전이(transference)라는 것은 정신분석과 같은 상담 치료에서 나타나는 ‘관계에 대한 감정’을 일컫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지금껏 숨겨온 내밀한 속내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죠. 치료 과정에서 치료자에게 이를 조금씩 이야기하고, 이해받고 공감받는 경험은 살아오며 처음 겪어보는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수용받는 경험들이 쌓여가며 인간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복잡한 감정을 통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이렇듯 전이 감정은 정신치료(psychotherapy)의 치료원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치료 과정 중에 나타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본인이 인식하고 있다면 치료자와 이러한 마음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이는 대개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났던 중요 인물과의 관계와 유사하게 나타나기 마련이거든요. 질문자님께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것처럼 여러 사람과 이러한 관계가 반복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자신이 가지는 타인에 대한 전이를 통찰하여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마음에서 격렬하게 몰아치다가도 금세 잔잔한 물결이 되기도 하지요. 분명 관계에서의 좌절과 상실감은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상처를 피하지 않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관계 안에서의 ‘나’는 더욱 성장해나갈 수 있는 법이기도 하지요. 이 또한 질문자님께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전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정신병과는 큰 관련은 없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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