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희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현재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어서 2년 동안 약을 먹고 있는데 쉽게 좋아지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제가 분노조절장애가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예전에는 화가 나도 속으로 삭이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물건 던지거나 부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말 걸면 귀찮게 느껴져서 화를 내면서 대답을 하고요.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랑 매번 부딪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아르바이트를 6번 정도 했는데, 담당자가 저에게 일을 잘 못한다면서, 일하는 점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바로 폭언을 했습니다. 당연히 제가 잘못한 점이니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흥분하여 소리치고 폭언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할 때 만나는 사람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지금까지 매번 그러고 있습니다. 고객이랑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그저께는 신호등을 건너다가 갑자기 차가 나타나 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때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저한테 “애야, 빨리 안 올라오니!”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저는 또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알았다고요, 아줌마!”라며 예의 없이 화를 냈습니다.

 

계속 어른들이랑 말다툼과 싸움만 일어나고 있고, 폭언하는 제 자신도 너무 당황스럽고 한심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랑 마주치기가 싫어지고요. 이러다 나도 모르게 더 거친 폭언과 나쁜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제 자신이 너무 무섭습니다. 원래 제 성격이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좋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저의 아버지는 이해심이 부족하고, 나쁜 말을 많이 하고, 폭력적이셔서 집에 있는 게 편하질 않아요. 부모님은 항상 의견이 안 맞아서 거의 싸우십니다. 그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또, 저는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항상 환경이 받쳐주질 못하고, 욕구가 이뤄지질 않으니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데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돼서 그만둬야 했고, 제 주변 친구들은 해외여행도 다니는데 저만 그렇지 못하니까 이런 여러 가지 불만이 쌓여서 분노조절장애가 온 걸까요? 분노조절장애 테스트 항목을 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저한테 해당됩니다. 제 상태가 정말 심각한가요? 확실히 분노조절장애인 건 맞는지요?

 

사진_픽셀

 

A) H님 안녕하세요. H님 마음엔 화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일단 ‘화’라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라는 감정은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또는 손해를 본다고’ 인지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알바 담당자가 일을 못한다고 무시했을 때’ 또는 ‘미술을 하고 싶은데, 자신 탓이 아니라 환경 탓에 의해 못하게 됐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예로 들 수 있죠.

그런데 이 ‘화’라는 감정은 (다른 많은 감정들도) ‘적절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풀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거대해진 ‘화’는 자신 스스로가 컨트롤하지 못하고, 마치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처럼 멋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본래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말이죠. 

그래서 '화'라는 감정은 풀어줘야만 합니다.

‘화’라는 감정을 ‘풀어준다’는 것은 대상과 목적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자신을 화나게 한 대상을 자신이 만족할 만큼 파괴시키거나 무릎을 꿇려야만 풀리는 감정입니다. 무서운 감정이죠. 현실세계에서는 이렇게까지 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관계’가 ‘감정’만큼 중요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꾸역꾸역 누르고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꾸역꾸역 눌린 화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한 가지 방향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폭발하게 됩니다. 마치 거대해진 풍선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펑펑 터져버립니다. 자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여 소리치고 폭언을 합니다. 말만 걸어도 화로 되받아치게 되죠. 심할 때는 물건을 던지고, 깨뜨리고 부숴버립니다. 이런 행동을 하고 난 후에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괴로워집니다. 자신의 무의식은 이 ‘화’라는 감정이 주위의 여러 대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다른 방향은 그 화라는 감정이 돌고 돌고 돌아서 자신한테로 향하게 됩니다. 자신에게로 향한 ‘화’는 스스로를 파괴시킵니다. 또한 자신에게로 향한 이 화라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많은 정신에너지가 쓰이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울증의 기전을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화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_픽셀

 

그렇다면 이 화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이 화가 가득 차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마음의 병을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야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찾을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이 화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생겨난 건지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찾아가는 방법은 기회가 되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자신이 화가 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매일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화가 나있다,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이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많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셋째, 화의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한 후에는 행동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화를 꾸역꾸역 참는 행동과 화를 갑자기 폭발시키는 행동, 이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넷째,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화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단명에 분노조절 장애라는 진단명은 없습니다. 분노조절 장애라는 것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간헐성 폭발장애에서 보이는 증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우울증에서도 불안장애에서도 그리고 마음의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서도 볼 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화라는 감정은 애초에 매우 다루기 힘든 감정이지만 노력해서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H님의 마음을 훨씬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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