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탈무드에서는 악마가 인간에게 선물해 준 것이 바로 술이라고 한다. 악마는 술을 처음 마실 때는 양처럼 온순해지며,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져 싸우고, 마지막에는 돼지처럼 추해지게 만들었다.

악마는 사람이 사자와 돼지처럼 되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마시면 사자와 돼지처럼 되는 음료를 누가 자발적으로 마시겠는가. 그래서 악마가 함정을 만들었다. 술을 조금만 마시면 양과 원숭이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내가 조절만 잘 한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사람에게 심어 준 것이다. 이런 환상을 더하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악마의 함정에 걸리지 않고 양과 원숭이의 시간만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사자와 돼지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사자와 돼지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악마는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사진_픽사베이

 

문제는 이 사자와 돼지의 시간이 만취자 자신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물을 부수고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만약 이런 행동으로 술을 마신 사람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면, 사람들이 술을 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담당하는 악마는 이미 여기까지 함정을 만들어 놨다. 그렇지 않고서야 술로 인한 범죄는 형을 감경하도록 만드는 법이 지금까지 한국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현행법에서는 심신미약상태로 인한 범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이 심신미약이라는 것은 정신질환이나 기타 건강상의 이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결정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중증 치매 환자가 물건을 던져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물건을 던진 것이 아니라, 중증 치매로 인해 의사결정능력이 떨어져서 물건을 던진 것이고, 그렇게 가해 의도 없이 던져진 물건에 의해 사람이 다쳤다고 본다. 즉, 주변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던진 물건에 우연히 사람이 맞은 것으로 판단하여 법원에서는 형을 감해 주는 것이다. 해칠 의도를 가지고 던진 것과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감형은 합당하다.

 

문제는 이 심신미약상태에 음주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음주도 정신질환처럼 사람을 심신미약상태로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정신질환과는 달리 스스로가 자신을 심신미약 상태로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자기 스스로를 지적장애, 치매, 조현병에 걸리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음주는 자신의 의지로 술을 마셔, 심신미약 상태가 된다. 심지어 얼마나 마시면 심신미약 상태가 되는지도 본인은 알고 있다. 즉 음주 상태에서의 범죄는, 범죄를 행할 당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의도는 없을 수 있어도,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는 상태로 스스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더 물어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은 음주 후 범죄에 대해 더 엄하게 처벌을 한다. 국내에서도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은 조두순 사건 이후 이런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현재까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은 형을 감경하는데 적용되고 있다.

 

사진_픽사베이

 

다행히 18년 5월, 박인숙 의원은 스스로 음주나 약물에 의한 심신장애를 야기한 사람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존 법의 좋은 취지를 보존하기 위해 타의로 투약된 마약이나, 강권에 따른 음주, 치료 목적의 약물투약 등에 대해서는 심신감경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현실과 법리, 의학적인 관점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개정안이다.

5월 1일. 구급대원이 자신이 구조하던 만취자에게 맞아서 사망했다. 심신미약에 대한 형법 개정안이 좀 더 일찍 발의됐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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